삼국사기 신라 본기 (원문+한글) 권 제 2
三國史記卷第二.
輸忠定難靖國贊化同德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守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禮部事集賢殿太學士監修國史上柱國致仕臣<金富軾>奉宣撰.
삼국사기 권 제 2
수충 정난 정국 찬화 동덕 공신, 개부 의동삼사, 검교 태사,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 이례부사, 집현전 태학사, 감수국사, 상주국, 치사 신 김 부식이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편찬함.
新羅本紀第二.
<阿達羅>尼師今·<伐休>尼師今·<奈解>尼師今·<助賁>尼師今·<沾解>尼師今·<味鄒>尼師今·<儒禮>尼師今·<基臨>尼師今·<訖解>尼師今.
신라본기 제 2
아달라 이사금, 벌휴 이사금, 나해 이사금, 조분 이사금,
첨해 이사금, 미추 이사금, 유례 이사금, 기림 이사금,
흘해 이사금.
○<阿達羅>尼師今立, <逸聖>長子也. 身長七尺, 豊準有奇相. 母<朴>氏, <支所禮>王之女, 妃<朴>氏<內禮>夫人, <祗摩王>之女也.
아달라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일성의 맏아들이다. 그는 키가 일곱 자였으며 풍채가 훌륭하고 얼굴 모양이 기이하였다. 어머니는 박씨인데 그녀는 지소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내례부인이다. 그녀는 지마왕의 딸이다.
○元年三月, 以<繼元>爲伊 , 委軍國政事.
원년 3월, 계원을 이찬으로 임명하여 군무와 정사를 맡겼다.
○二年, 春正月, 親祀(+始) 祖廟, 大赦. 以<興宣>爲一吉 .
李丙燾.
今西龍.
2년 봄 정월, 왕이 시조묘에 직접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흥선을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三年, 夏四月, 隕霜. 開< 立嶺>路.
3년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계립령에 길이 개통되었다.
○四年, 春二月, 始置<甘勿>·<馬山>二縣. 三月, 巡幸<長嶺鎭>, 勞戍卒, 各賜征袍.
4년 봄 2월, 감물현과 마산현 두 현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다.
3월, 왕이 장령진에 행차하여 주둔하는 병사들을 위로하고 각각의 군사들에게 군복을 하사하였다.
○五年, 春三月, 開<竹嶺>. <倭>人來聘.
5년 봄 3월, 죽령이 개통되었다. 왜인이 예방해왔다.
○七年, 夏四月, 暴雨, <閼川>水溢, 漂流人家, <金城>北門自毁.
7년 여름 4월, 폭우로 알천이 넘쳐서 집이 떠내려 가고, 금성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八年, 秋七月, 蝗害穀. 海魚多出死.
8년 가을 7월,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치고, 바다 고기가 육지로 올라와 죽었다.
○九年, 巡幸<沙道城>, 勞戍卒.
9년, 왕이 사도성에 행차하여 주둔하는 병사를 위로하였다.
○十一年, 春二月, 龍見京都.
11년 봄 2월, 서울에 용이 나타났다.
○(-十)二年 , 冬十月, 阿 <吉宣>謀叛, 發覺, 懼誅亡入<百濟>. 王移書求之, <百濟>不許. 王怒出師伐之, <百濟> 城守不出, 我軍粮盡乃歸.
趙炳舜. 『三國史節要』. 『百濟本紀』.
12년 겨울 10월,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자 처형을 두려워하여 백제로 도망갔다. 왕이 글을 보내 그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으나 백제가 응하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는 성을 닫고 수비하며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는 식량이 떨어져 돌아왔다.
○十三年, 春正月辛亥朔, 日有食之.
13년 봄 정월 초하루 신해일에 일식이 있었다.
○十四年, 秋七月, <百濟>襲破國西二城, 虜獲民口一千而去. 八月, 命一吉 <興宣>, 領兵二萬伐之, 王又率騎八千, 自<漢水>臨之, <百濟>大懼, 還其所掠男女, 乞和.
14년 가을 7월, 백제가 서쪽의 두 성을 격파하고, 주민 1천 명을 잡아 갔다.
8월, 일길찬 흥선으로 하여금 군사 2만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게 하고, 또한 왕은 기병 8천을 거느리고 한수로부터 그 곳에 도착하였다. 백제는 크게 두려워 하여 잡아갔던 남녀를 돌려주고 화친을 요구하였다.
○十五年, 夏四月, 伊 <繼元>卒, 以<興宣>爲伊 .
15년 여름 4월, 이찬 계원이 사망하자 흥선을 이찬에 임명하였다.
○十七年, 春二月, 重修始祖廟. 秋七月, 京師地震, 霜雹害穀. 冬十月, <百濟>寇邊.
17년 봄 2월, 시조묘를 중수하였다.
가을 7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고,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겨울 10월, 백제가 변경을 약탈하였다.
○十八年春, 穀貴, 民飢.
18년 봄, 곡식이 귀하여 백성들이 굶주렸다.
○十九年, 春正月, 以<仇道>爲波珍 , <仇須兮>爲□吉 {一吉 } . 二月, 有事始祖廟. 京都大疫.
趙炳舜. 『三國史節要』.
19년 봄 정월, 구도를 파진찬에 임명하고 구수혜를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2월,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遣使來聘.
20년 여름 5월,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예방해왔다.
○二十一年, 春正月, 雨王{土} . 二月旱, 井泉 {竭} .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21년 봄 정월, 흙비가 내렸다.
2월, 가뭄이 들어 우물과 샘물이 말랐다.
○三十一年, 春三月, 王薨.
31년 봄 3월, 왕이 별세하였다.
○<伐休>[一作<發暉>.]尼師今立. 姓<昔>, <脫解王>子<仇鄒>角干之子也. 母姓<金>氏, <只珍內禮>夫人. <阿達羅>薨, 無子, 國人立之. 王占風雲, 預知水旱及年之豊儉, 又知人邪正, 人謂之聖.
벌휴[발휘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석씨이며, 탈해왕의 아들 구추 각간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성은 김씨이다. 그녀는 지진내례부인이다. 아달라가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왕은 바람과 구름을 보고 점을 쳐서 홍수와 가뭄, 그 해에 풍년이 들 것인가 흉년이 들 것인가를 미리 알았으며, 또한 사람이 정직한가 사악한가를 알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성인이라고 불렀다.
○二年, 春正月, 親祀始祖廟, 大赦. 二月, 拜波珍 <仇道>·一吉 <仇須兮>爲左右軍主, 伐<召文國>. 軍主之名始於此 .
李丙燾. '軍主之名始於此'라는 기록은 智證麻立干 6년에도 나온다.
2년 봄 정월, 시조묘에 직접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월,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가 좌우 군주가 되어 소문국을 정벌하였다. 군주라는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三年, 春正月, 巡幸州郡, 觀察風俗. 夏五月壬申{壬辰} 晦, 日有食之. 秋七月, <南新縣>進嘉禾.
趙炳舜. 『三國史節要』. 『三國遺事』.
3년 봄 정월, 왕이 주와 군을 순행하여 민정을 시찰하였다.
여름 5월 그믐 임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7월, 남신현에서 상서로운 벼를 진상하였다.
○四年, 春三月, 下令: 州郡, 無作土木之事, 以奪農時. 冬十月, 北地大雪, 深一丈.
4년 봄 3월, 주와 군에 명령을 내려 농사철에 토목 공사를 하지 않도록 하였다.
겨울 10월, 북부 지방에 큰 눈이 내려 한 장 깊이로 쌓였다.
○五年, 春二月, <百濟>來攻<母山城>. 命波珍 <仇道>, 出兵拒之.
5년 봄 2월,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하였다. 파진찬 구도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방어하게 하였다.
○六{五} 年, 秋七月, <仇道>與<百濟>戰於<狗壤>, 勝之. 殺獲五百餘級.
趙炳舜. 『三國史節要』.
6년 가을 7월, 구도가 백제와 구양에서 싸워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5백여 명을 죽였다.
○七年, 秋八月, <百濟>襲西境<圓山鄕>, 又進圍< 谷城{缶谷城}> . <仇道>率勁騎五百擊之, <百濟>兵佯走. <仇道>追及<蛙山>, 爲<百濟>所敗. 王以<仇道>失策, 貶爲<缶谷城>主, 以<薛支>爲左軍主.
趙炳舜. 『三國史節要』.
7년 가을 8월, 백제가 서쪽 국경 원산향을 습격하고, 다시 진격하여 부곡성을 포위하였다. 구도가 정예 기병 5백 명을 거느리고 공격하자, 백제 군사가 거짓으로 달아나는 체하였다. 구도가 와산까지 추격하다가 백제에게 패배하였다. 왕은 구도가 잘못했다고 하여 부곡성주로 강등시키고, 설지를 좌군주에 임명하였다.
○八年, 秋九月, 蚩尤旗見于角·亢.
8년 가을 9월, 치우기 별이 각성 성좌와 항성 성좌에 나타났다.
○九年, 春正月, 拜<國良>爲阿 , <述明>爲一吉 . □{三} 月, 京都雪深三尺. 夏五月, 大水, 山崩十餘所.
趙炳舜. 『三國史節要』.
9년 봄 정월, 국량을 아찬에 임명하고, 술명을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3월, 서울에 눈이 내렸는데 깊이가 석 자였다.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산이 10여 군데 무너졌다.
○十年, 春正月甲寅朔, 日有食之. 三月, <漢祇部>女, 一産四男一女. 六月, <倭>人大饑, 來求食者千餘人.
10년 봄 정월 초하루 갑인일에 일식이 있었다.
3월, 한기부 여인이 한번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낳았다.
6월, 왜인 천여 명이 큰 기근으로 인하여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왔다.
○十一年, 夏六月乙巳晦, 日有食之.
11년 여름 6월 그믐 을사일에 일식이 있었다.
○十三年, 春二月, 重修宮室. 三月, 旱. 夏四月, 震宮南大樹, 又震<金城>東門. 王薨.
13년 봄 2월, 궁실을 중수하였다.
3월, 가뭄이 들었다.
여름 4월, 대궐 남쪽 큰 나무에 벼락이 치고, 금성 동문에도 벼락이 쳤다. 왕이 사망하였다.
○<奈解>尼師今立, <伐休王>之孫也. 母, <內禮>夫人. 妃<昔>氏, <助賁王>之妹. 容儀雄偉, 有俊才. 前王太子<骨正>及第二十{子} <伊買>, 先死, 大孫尙幼少, 乃立<伊買>之子, 是爲<奈解>尼師今. 是年, 自正月至四月不雨, 及王卽位之日, 大雨, 百姓歡慶.
趙炳舜. 『三國史節要』.
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벌휴왕의 손자이다. 어머니는 내례부인이다. 왕비 석씨는 조분왕의 누이이다. 왕은 용모와 풍채가 훌륭하였고 재주가 뛰어났다. 전 임금의 태자 골정과 둘째 아들 이매가 먼저 죽고 장손이 아직 어렸으므로, 이매의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이 사람이 나해 이사금이다. 이 해에 봄 정월부터 4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다가, 왕이 즉위하던 날 큰 비가 내렸으므로 백성들이 즐거워 하며 경축하였다.
○二年, 春正月, 謁始祖廟.
2년 봄 정월, 왕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三年, 夏四月, 始祖廟前臥柳自起. 五月, 國西大水, 免遭水州縣一年租調. 秋七月, 遣使撫問.
3년 여름 4월, 시조묘 앞에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일어섰다.
5월, 서쪽 지방에 홍수가 나자 수재를 당한 주와 현에 1년의 세금을 면제하였고, 가을 7월에 사신을 보내 위문하였다.
○四年, 秋七月, <百濟>侵境.
4년 가을 7월, 백제가 국경을 침범하였다.
○五年, 秋七月, 太白晝見. 隕霜殺草. 九月庚午朔, 日有食之. 大 {閱} 於<閼川>.
趙炳舜. 『三國史節要』.
5년 가을 7월,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 서리가 내려 풀이 죽었다.
9월 초하루 경오일에 일식이 있었다. 알천에서 크게 군대를 사열하였다.
○六年, 春二月, <加耶國>請和. 三月丁卯朔, 日有食之. 大旱, 錄內外繫囚, 原輕罪.
6년 봄 2월, 가야국이 화친을 청해왔다.
3월 초하루 정묘일에 일식이 있었다.
큰 가뭄이 들자, 서울과 지방의 죄수들을 조사하여 죄질이 가벼운 죄수는 석방하였다.
○八年, 冬十月, <靺鞨>犯境. 桃李華. 人大疫.
8년 겨울 10월, 말갈이 국경을 침범하였다. 복숭아와 오얏나무에 꽃이 피고, 백성들 사이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十年, 春二月, 拜<眞忠>爲一伐 , 以參國政. 秋七月, 霜雹殺穀. 太白犯月. 八月, 狐鳴<金城>及始祖廟庭.
10년 봄 2월, 진충을 일벌찬에 임명하여 국정에 참여시켰다.
가을 7월,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이 죽고, 금성이 달을 범했다.
8월, 여우가 금성과 시조묘의 뜰에서 울었다.
○十二年, 春正月, 拜王子<利音>[或云<奈音>.]爲伊伐 , 兼知內外兵馬事.
12년 봄 정월, 왕의 아들 이음[혹은 나음이라고도 한다.]을 이벌찬에 임명하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十三年, 春二月, 西巡郡邑, 浹旬而返. 夏四月, <倭>人犯境. 遣伊伐 <利音>, 將兵拒之.
13년 봄 2월, 왕이 서쪽의 군과 읍을 순찰하고 열흘 만에 돌아왔다.
여름 4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므로,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방어하게 하였다.
○十四年, 秋七月, 浦上八國謀侵<加羅{阿羅}> , <加羅{阿羅}> 王子來請救. 王命大子{太子} <于老>與伊伐 <利音>, 將六部兵往救之. 擊殺八國將軍, 奪所虜六千人, 還之.
李丙燾. 勿稽子傳.李丙燾. 勿稽子傳.趙炳舜. 『三國史節要』.
14년 가을 7월, 바닷가의 여덟 나라가 공모하여 가라를 침범하자, 가라 왕자가 구원을 요청했다. 왕이 태자 우로와 일벌찬 이음에게 6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그들은 여덟 나라 장군을 죽이고, 포로 6천 명을 잡아 돌아왔다.
○十五年, 春夏旱, 發使錄郡邑獄囚, 除二死, 餘悉原之.
15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자 사신을 보내 군읍의 죄수들을 조사하여 두 종류의 사형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죄수는 모두 석방하였다.
○十六年, 春正月, 拜<萱堅>爲伊 , <允宗>爲一吉 .
16년, 봄 정월에 훤견을 이찬에 임명하고 윤종을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十七年, 春三月, <加耶>送王子爲質. 夏五月, 大雨, 漂毁民屋.
17년 봄 3월, 가야가 왕자를 인질로 보내왔다.
여름 5월, 큰 비가 내려 민가가 유실되었다.
○十九年, 春三月, 大風折才{木} . 秋七月, <百濟>來攻國西<腰車城>, 殺城主<薛夫>. 王命伊伐 <利音>, 率精兵六千伐<百濟>, 破<沙峴城>. 冬十二月, 雷.
趙炳舜. 『三國史節要』.
19년 봄 3월,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였다.
가을 7월, 백제가 서쪽 지방 요거성을 공격하여 성주 설부를 죽였다. 왕이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정병 6천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였다. 그들은 사현성을 격파하였다.
겨울 12월, 우레가 있었다.
○二十三年, 秋七月, 武庫兵物自出. <百濟>人來國{圍} <獐山城>, 王親率兵出擊走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23년 가을 7월, 무기고의 병기가 저절로 밖으로 나왔다. 백제가 장산성을 포위하였으므로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서 이를 격퇴하였다.
○二十五年, 春三月, 伊伐 <利音>卒. 以<忠萱>爲伊伐 , 兼知兵馬事. 秋七月, 大閱<楊山>西.
25년 봄 3월, 이벌찬 이음이 사망하자 충훤을 이벌찬에 임명하고, 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가을 7월, 양산 서쪽에서 크게 군대를 사열하였다.
○二十七年, 夏四月, 雹傷菽麥. <南新縣>人死, 歷月復活. 冬十月, <百濟>兵入<牛頭州>, 伊伐 <忠萱>將兵拒之. 至<熊谷>, 爲賊所敗, 單騎而返. 貶爲鎭主, 以<連珍>爲伊伐 , 兼知兵馬事.
27년 여름 4월, 우박이 내려 콩과 보리가 상했다. 남신현에서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음 달에 다시 살아났다.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우두주에 들어 왔으므로 이벌찬 충훤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막으려 하였으나, 웅곡에 이르러 적에게 패하자 혼자 말을 타고 돌아왔다. 왕은 그를 진주로 강등시키고 연진을 이벌찬에 임명하여 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二十九年, 秋七月, 伊伐 <連珍>與<百濟>戰, <烽山>下破之, 殺獲一千餘級. 八月, 築<烽山城>.
29년 가을 7월, 이벌찬 연진이 백제와 전투를 하였다. 그는 봉산 아래에서 백제병을 격파하고 1천여 명을 죽였다.
8월, 봉산성을 쌓았다.
○三十一年, 春不雨, 至秋七月乃雨. 民飢, 發倉 賑給. 冬十月, 錄內外獄囚, 原輕罪.
31년, 봄에 비가 내리지 않다가 가을 7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내렸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풀어 구제하였다.
겨울 10월, 서울과 지방의 죄수를 조사하여 죄질이 가벼운 자는 석방하였다.
○三十二年, 春二月, 巡狩西南郡邑, 三月還. 拜波珍 <康萱>爲伊 .
32년 봄 2월, 왕이 서남쪽 군읍을 순행하다가 3월에 돌아왔다.
파진찬 강훤을 이찬에 임명하였다.
○三十四年, 夏四月, 蛇鳴南庫三日. 秋九月, 地震. 冬十月, 大雪深五尺.
34년 여름 4월, 뱀이 남쪽 창고에서 사흘 동안 울었다.
가을 9월, 지진이 있었다.
겨울 10월, 눈이 크게 내려 다섯 자나 쌓였다.
○三十五年, 春三月, 王薨.
35년 봄 3월, 왕이 별세하였다.
○<助賁>尼師今立,[一云<諸貴{諸賁}> .] 姓, <昔>氏, <伐休>尼師今之孫也. 父, <骨正>[一作<忽爭>.]葛文王. 母, <金>氏<玉帽>夫人, <仇道>葛文王之女; 妃, <阿爾兮>夫人, <奈解王>之女也. 前王將死, 遺言以壻<助賁>繼位. 王身長, 美儀 {表} , 臨事明斷, 國人畏敬之.
『북한본』.趙炳舜. 『三國史節要』.
조분 이사금[제분이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성이 석씨이고, 벌휴 이사금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갈문왕 골정[홀쟁이라고도 한다.]이다. 어머니는 김씨 옥모부인이다. 그녀는 갈문왕 구도의 딸이다. 왕비는 아이혜부인이다. 그녀는 나해왕의 딸이다. 전 임금이 죽음을 앞두고, 사위 조분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왕은 키가 크며 외모가 훌륭하고, 일이 생기면 명석한 판단을 내렸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경외하였다.
○元年, 拜<連忠>爲伊 , 委軍國事. 秋七月, 謁 {始} 祖廟.
趙炳舜. 『三國史節要』.
원년, 연충을 이찬에 임명하여 군무와 국정을 맡겼다.
가을 7월, 왕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二年, 秋七月, 以伊 <于老>爲大將軍, 討破<甘文國>, 以其地爲郡.
2년 가을 7월, 이찬 우로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벌하여 승리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三年, 夏四月, <倭>人猝至圍<金城>. 王親出戰, 賊潰走, 遣輕騎追擊之, 殺獲一千餘級.
3년 여름 4월, 왜인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직접 나아가 싸웠다. 적이 흩어져 도주하자 정예 기병을 보내 추격하여 1천여 명을 죽였다.
○四年, 夏四月, 大風飛屋瓦. 五月, <倭>兵寇東邊. 秋七月, 伊 <于老>與<倭>人戰<沙道>, 乘風縱火焚舟, 賊赴水死盡.
4년 여름 4월, 큰 바람이 불어와 기와가 날았다.
5월, 왜병이 동쪽 변경을 약탈하였다.
가을 7월, 이찬 우로가 왜인과 사도에서 싸웠다. 그는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질러 배를 불태웠다.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六年, 春正月, 東巡撫恤.
6년 봄 정월, 왕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백성을 위문하고 구제하였다.
○七年, 春二月, <骨伐國>王<阿音夫>, 率衆來降, 賜第宅田莊安之, 以其地爲郡.
7년 봄 2월, 골벌국왕 아음부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왔다. 왕은 그들에게 집과 밭을 주어 편안히 살게 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八年, 秋八月, 蝗害穀.
8년 가을 8월,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다.
○十一年, <百濟>侵西邊.
11년,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十三年秋, 大有年. <古 郡>進嘉禾.
13년 가을, 큰 풍년이 들었다. 고타군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진상하였다.
○十五年, 春正月, 拜伊 <于老>爲舒弗邯, 兼知兵馬事.
15년 봄 정월, 이찬 우로를 서불한에 임명하고, 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十六年, 冬十月, <高句麗>侵北邊, <于老>將兵出擊之, 不克, 退保<馬頭柵>. 其夜苦寒, <于老>勞士卒, 躬燒柴煖之, 群心感激.
16년 겨울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자, 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을 수비하였다. 그 날 밤 날씨가 몹시 추워지자, 우로가 사졸들을 위로하고 직접 장작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하여 주었다. 사졸들이 진심으로 감격하였다.
○十七年, 冬十月, 東南有白氣如匹練. 十一月, 京都地震.
17년 겨울 10월, 동남방에 흰 기운이 한 필의 명주를 펴놓은 것처럼 뻗쳤다.
11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十八年, 夏五月, 王薨.
18년 여름 5월, 왕이 별세하였다.
○<沾解>尼師今立, <助賁王>同母弟也.
첨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조분왕의 동복 아우이다.
○元年, 秋七月, 謁始祖廟. 封父<骨正>爲<世神>葛文王.
○論曰: <漢><宣帝>卽位, 有司奏: "爲人後者爲之子也. 故降其父母不得祭, 尊祖之義也. 是以帝所生父稱親, 諡曰悼, 母曰悼后, 比諸侯王." 此合經義, 爲萬世法. 故<後漢><光武帝>·<宋><英宗>, 法而行之. <新羅>自王親入繼大統之君, 無不封崇其父稱王, 非特如此而已, 封其外舅者亦有之. 此, 非禮, 固不可以爲法也.
원년 가을 7월, 왕이 시조묘를 참배하였다. 그 아버지 골정을 세신 갈문왕으로 봉했다.
저자의 견해 : 한 나라 선제가 즉위했을 때, 유사가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대를 잇는 자는, 자기에게 대를 물려준 그 사람의 아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친부모를 낮추어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는 황제의 조상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황제께서는 생부를 친(親)이라 부르시고, 시호는 도(悼)라 하며, 생모는 도후(悼后)라고 불러서, 제후나 왕의 지위와 같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경전의 뜻과 합치된다. 따라서 이것이 만세의 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후한의 광무제와 송나라 영종은 이를 본받아 시행하였다. 신라에서는 왕의 친족 신분으로서 왕통을 이은 임금이 자신의 생부를 왕으로 추봉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인까지 왕으로 봉한 일도 있었다. 이는 예에 맞지 않으므로 절대로 법도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二年, 春正{二} 月, 以伊 <長萱>爲舒弗邯, 以參國政. 二月, 遣使<高句麗>結和.
趙炳舜. 『三國史節要』.
2년 봄 정월, 이찬 장훤을 서불한으로 임명하여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2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三年, 夏四月, <倭>人殺舒弗邯<于老>. 秋七月, 作<南堂>於宮南.[<南堂>或云<都堂>.] 以<良夫>爲伊 .
3년 여름 4월, 왜인이 서불한 우로를 죽였다.
가을 7월, 남당[도당이라고도 한다.]을 대궐 남쪽에 지었다.
양부를 이찬에 임명하였다.
○五年, 春正月, 始聽政於<南堂>. <漢祇部>人<夫道>者, 家貧無諂, 工書算, 著名於時. 王徵之爲阿 , 委以物藏庫事務.
5년 봄 정월, 처음으로 남당에서 정사를 처리하였다.
한기부 사람 부도란 자는 집이 가난하였으나 아첨하는 일이 없고 글씨와 산수에 능하여 당시에 명성이 높았다. 왕이 그를 불러 아찬으로 임명하여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업무를 맡겼다.
○七年, 夏四月, 龍見宮東池. <金城>南臥柳自起. 自五月至七月不雨, 禱祀祖廟及名山, 乃雨. 年饑, 多盜賊.
7년 여름 4월, 대궐 동쪽 연못에서 용이 나타나고, 금성 남쪽에서는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저절로 일어섰다.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으므로, 조묘와 명산에 제사지내고 기원하였다. 곧 비가 내렸다. 흉년이 들어 도둑이 많이 생겼다.
○九年, 秋九月, <百濟>來侵. 一伐 <翊宗>, 逆戰於< 谷{槐谷}> 西, 爲賊所殺. 冬十月, <百濟>攻<烽山城>, 不下.
趙炳舜. 『三國史節要』.
9년 가을 9월, 백제가 침범하자 일벌찬 익종이 괴곡 서쪽에서 그들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겨울 10월, 백제가 봉산성을 공격해왔으나 성을 점령하지 못했다.
○十年, 春三月, 國東海出大魚三, 長三丈, 高丈有二尺. 冬十月晦, 日有食之.
10년 봄 3월, 동쪽 바다에서 큰 물고기 세 마리가 나왔다. 그 길이는 세 발, 폭은 한 길 두 자였다.
겨울 10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十三年, 秋七月, 旱蝗. 年荒, 多盜.
13년 가을 7월,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생겼다. 흉년이 들어 도둑이 많았다.
○十四年夏, 大雨, 山崩四十餘所. 秋七月, 星 于東方, 二十五日而滅.
14년, 여름에 큰 비가 내려 40여 군데의 산이 무너졌다.
가을 7월,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혜성은 25일만에 사라졌다.
○十五年, 春二月, 築<達伐城>, 以奈麻<克宗>爲城主. 三月, <百濟>遣使請和, 不許. 冬十二月二十八日, 王暴疾薨.
15년 봄 2월, 달벌성을 쌓고, 내마 극종을 성주로 임명하였다.
3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겨울 12월 28일, 갑자기 병이 나서 왕이 별세하였다.
○<味鄒>尼師今立,[一云<味照>.] 姓<金>. 母<朴>氏, 葛文王<伊柒>之女; 妃<昔>氏<光明>夫人, <助賁王>之女. 其先<閼智>出於 林, <脫解王>得之, 養於宮中, 後拜爲大輔. <閼智>生<勢漢>, <勢漢>生<阿道>, <阿道>生<首留>, <首留>生<郁甫>, <郁甫>生<仇道>, <仇道>則<味鄒>之考也. <沾解>無子, 國人立<味鄒>. 此, <金>氏有國之始也.
미추 이사금[미조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이다. 그녀는 갈문왕 이칠의 딸이다.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이다. 그녀는 조분왕의 딸이다. 미추의 조상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자 탈해왕이 데려와 궁중에서 길렀고, 뒤에 대보로 임명하였다. 알지가 세한을 낳고, 세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가 수류를 낳고, 수류가 욱보를 낳고, 욱보가 구도를 낳았으니,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초가 되었다.
○元年, 春三月, 龍見宮東池. 秋七月, <金城>西門災, 延燒人家三百餘區.
원년 봄 3월, 대궐 동쪽 못에 용이 나타났다.
가을 7월, 금성서문에 불이 났고, 인가 삼백여 호가 연이어 불탔다.
○二年, 春正月, 拜伊 <良夫>爲舒弗邯, 兼知內外兵馬事. 二月, 親祀國祖廟. 大赦. 封考<仇道>爲葛文王.
2년 봄 정월, 이찬 양부를 서불한에 임명하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2월, 왕이 조묘에 직접 제사를 지냈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에 봉하였다.
○三年, 春二月, 東巡幸望海. 三月, 幸<黃山>, 問高年及貧不能自存者, 賑恤之.
3년 봄 2월, 왕이 동쪽 지방을 순행하여 바다에 제사를 지냈다.
3월, 왕이 황산에 행차하여 노인 및 가난하여 스스로 살 수 없는 자들을 위문하고 구제하였다.
○五年, 秋八月, <百濟>來攻<烽山城>. 城主<直宣>率壯士二百人出擊之, 賊敗走. 王聞之, 拜<直宣>爲一吉 , 厚賞士卒.
5년 가을 8월, 백제가 봉산성을 공격하였다. 성주 직선이 장사 2백 명을 거느리고 출격하였다. 적들은 패주하였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직선을 일길찬에 임명하고, 병졸들에게 후하게 상을 주었다.
○七年, 春夏不雨. 會群臣於南堂, 親問政刑得失, 又遣使五人, 巡問百姓苦患.
7년, 봄과 여름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여러 신하들을 남당에 모아놓고 왕이 직접 정사와 형벌의 잘잘못을 물었으며, 또한 사신 다섯 명을 파견하여, 각지를 순회하면서 백성들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며 걱정하는지를 조사하게 하였다.
○十一年, 春二月, 下令: 凡有害農事者, 一切除之. 秋七月, 霜雹害穀. 冬十一月, <百濟>侵邊.
11년 봄 2월, 농사에 해가 되는 일은 모두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을 7월,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에 피해를 주었다.
겨울 11월,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十五年, 春二月, 臣寮請改作宮室, 上{王} 重勞人, 不從.
趙炳舜. 『三國史節要』.
15년 봄 2월, 신하들이 궁궐을 다시 짓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백성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은 중대사라고 여겨 이에 따르지 않았다.
○十七年, 夏四月, 暴風拔木. 冬十月, <百濟>兵來圍<槐谷城>. 命彼珍 {波珍 } <正源>領兵拒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17년 여름 4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와서 괴곡성을 포위하였다. 파진찬 정원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방어하게 하였다.
○十九年, 夏四月, 旱. 錄囚.
19년 여름 4월, 가뭄이 들었다. 죄수들을 재심사하였다.
○二十年, 春正月, 拜<弘權>爲伊 , <良質>爲一吉 , <光謙>爲沙 . 二月, 謁廟{祖} . 秋九月, 大閱<楊山>西.
趙炳舜. 『三國史節要』.
20년 봄 정월, 홍권을 이찬, 양질을 일길찬, 광겸을 사찬으로 임명하였다.
2월,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가을 9월, 양산 서쪽에서 크게 군사를 사열하였다.
○二十二年, 秋九月, <百濟>侵邊. 冬十月, 圍<槐谷城>. 命一吉 <良質>領兵禦之.
22년 가을 9월에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고, 겨울 10월에는 괴곡성을 포위하였다. 일길찬 양질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방어하게 하였다.
○二十三年, 春二月, 巡撫國西諸城. 冬十月, 王薨, 葬<大陵>.[一云<什長陵{竹長陵}> .]
趙炳舜. 『三國史節要』.
23년 봄 2월, 왕이 서쪽 지방의 여러 성을 순행하면서 백성들을 위문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별세하였다. 대릉[죽장릉이라고도 한다.]에 장사지냈다.
○<儒禮>尼師今立,[古記第三, 第十四, 二王同諱<儒理>, 或云<儒禮>, 未知孰是.] <助賁王>長子. 母<村{朴}> 氏, 葛文王<奈音>之女. 嘗夜行, 星光入口, 因有娠. 載誕之夕, 異香滿室.
趙炳舜. 『三國史節要』.
유례 이사금[고기에는 제 3대, 제 14대의 두 왕의 이름을 똑같이 유리 혹은 유례라 하였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조분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씨이고, 갈문왕 나음의 딸이었다. 그녀는 에전에 밤길을 가다가 별빛이 입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임신이 되었다. 유례를 낳던 날 저녁에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찼었다.
○二年, 春正月, 謁始祖廟. 二月, 拜伊 <弘權>爲舒弗邯, 委以機務.
2년 봄 정월, 왕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2월, 이찬 홍권을 서불한에 임명하고 중요한 정무를 맡겼다.
○三年, 春正月, <百濟>遣使請和. 三月, 旱.
3년 봄 정월, 백제가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요청하였다.
3월, 가뭄이 들었다.
○四年, 夏四月, <倭>人襲<一禮部{一禮郡} >, 縱火燒之, 虜人一千而去.
李丙燾.
[북한본].
4년 여름 4월, 왜인이 일례부를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1천 명을 잡아 갔다.
○六年, 夏五月, 聞<倭>兵至, 理舟楫, 繕甲兵.
6년 여름 5월, 왜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선박과 병기를 수리하였다.
○七年, 夏五月, 大水, <月城>頹毁.
7년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월성이 무너졌다.
○八年, 春正月, 拜<末仇>爲伊伐 . <末仇>忠貞, 有智略, 王常訪問政要.
8년 봄 정월, 말구를 이벌찬에 임명하였다. 말구는 충직하고 지략이 많았다. 왕은 자주 그를 찾아가서 정사의 요령을 물었다.
○九年, 夏六月, <倭>兵攻陷<沙道城>, 命一吉 <大谷>, 領兵救完之. 秋七月, 旱. 蝗.
9년 여름 6월, 왜병이 사도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일길찬 대곡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도록 하였다.
가을 7월, 날씨가 가물었다.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十年, 春二月, 改築<沙道城>, 移<沙伐州>豪民八十餘家.
10년 봄 2월, 사도성을 개축하고, 사벌주의 호민 80여 호를 옮겨 살도록 하였다.
○十一年夏, <倭>兵來攻<長峰城>, 不克. 秋七月, <多沙郡>進嘉禾.
11년, 여름에 왜병이 장봉성을 공격하였으나 그들은 승리하지 못하였다.
가을 7월, 다사군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진상하였다.
○十二年春, 王謂臣下曰: "<倭>人屢犯我城邑, 百姓不得安居. 吾欲與<百濟>謀, 一時浮海, 入擊其國, 如何?" 舒弗邯<弘權>對曰: "吾人不習水戰, 冒{ } 險遠征, 恐有不測之危. 況<百濟>多詐, 常有呑 我國之心, 亦恐難與同謀." 王曰: "善."
趙炳舜. 『三國史節要』.
12년, 봄에 왕이 신하에게 "왜인이 자주 우리 성읍을 침범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없다. 내가 백제와 함께 계획을 세워 백제와 우리가 일시에 바다를 건너 왜국을 공격하고자 하는데 이 계획이 어떠한가?"라고 말하였다. 서불한 홍권이 "우리는 수전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모험삼아 원정을 하는 경우에는 예상 밖의 위험이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더구나 백제는 사술이 많고, 항상 우리 나라를 병탐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그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옳다"고 말하였다.
○十四年, 春正月, 以<智良>爲伊 , <長昕>爲一吉 , <順宣>爲沙 . <伊西古國>來攻<金城>, 我大擧兵防禦, 不能攘, 忽有異兵來, 其數不可勝紀. 人皆珥竹葉, 與我軍同擊賊破之, 後不知其所歸. 人或見竹葉數萬積於<竹長陵>. 由是, 國人謂先王以陰兵助戰也.
14년, 봄 정월, 지량을 이찬에, 장흔을 일길찬에, 순선을 사찬에 임명하였다.
이서고국이 금성을 공격해왔다. 우리 나라가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이를 방어하였으나 물리칠 수 없었다. 그 때 갑자기 이상한 병사들이 나타났는데 그 수를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댓잎을 귀에 꽂았는데 우리 군사와 함께 적군을 쳐부수고 난 후에는 돌아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수만 개의 댓잎이 죽장릉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이 "돌아가신 임금께서 하늘의 군사를 보내 전쟁을 도우셨다"고 말하였다.
○十五年, 春二月, 京都大霧不辨人, 五月{日} 而霽. 冬十二月, 王薨.
趙炳舜. 『三國史節要』.
15년 봄 2월, 서울에 안개가 심하여 사람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안개는 닷새 만에 개었다.
겨울 12월, 왕이 별세하였다.
○<基臨>[一云<基丘{基立}> .]尼師今立, <助賁>尼師今之孫也. 父<乞淑>用 {伊 } .[一云: <乞淑>, <助賁>之孫也.] 性寬厚, 人皆稱之.
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
今西龍.
기림[기립이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조분 이사금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걸숙 이찬이다.[걸숙은 조분의 손자라고도 한다.] 그는 성격이 관대하여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二年, 春正月, 拜<長昕>爲伊 , 兼知內外兵馬事. 二月, 祀始祖廟.
2년 봄 정월, 장흔을 이찬으로 임명하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2월,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三年, 春正月, 與<倭>國交聘. 二月, 巡幸<比列忽>, 親問高年及貧窮者, 賜穀有 {差} . 三月, 至<牛頭州>, 望祭<太白山>. <樂浪>·<帶方>兩國歸服.
趙炳舜. 『三國史節要』.
3년 봄 정월, 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2월, 왕이 비열홀에 순행하여 나이 많은 자와 가난한 자를 직접 위문하고 어려운 정도에 따라 곡식을 하사하였다.
3월, 우두주에 이르러 태백산에 제사를 지냈다. 낙랑과 대방 두 나라가 항복해왔다.
○五年, 春夏旱.
5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七年, 秋八月, 地震. 泉湧. 九月, 京都地震, 壞民屋, 有死者.
7년 가을 8월, 지진이 있었다. 샘물이 솟아 올랐다.
9월, 서울에 지진이 발생하여 민가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十年, 復國號<新羅>.
10년, 국호를 다시 신라로 하였다.
○十三年, 夏五月, 王寢疾彌留, 赦內外獄囚. 六月, 王薨.
13년 여름 5월, 왕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중앙과 지방의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6월, 왕이 별세하였다.
○<訖解>尼師今立, <奈解王>孫也. 父<于老>角干. 母<命元>夫人, <助賁王>女也. <千老{于老}> 事君有功, 累爲舒弗邯, 見<訖解>狀貌俊異, 心膽明敏, 爲事異於常流. 乃謂諸侯曰: "興吾家者, 必此兒也." 至是, <基臨>薨, 無子. 群臣議曰: "<訖解>幼, 有老成之德." 乃奉立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나해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로 각간이다. 그의 어머니는 명원부인이니, 조분왕의 딸이다. 우로는 임금을 섬기는 데에 공로가 있었으므로 여러 번 서불한이 되었다. 그는 흘해의 용모가 준수하며, 심기가 강직하고 두뇌가 명민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보고 여러 제후들에게 말했다. "내 집안을 흥하게 할 자는 반드시 이 아이다." 이 때 기림이 죽고 아들이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흘해가 어리기는 하지만 나이든 사람이 갖출 수 있는 덕을 지녔다"라 하고 그를 받들어 왕으로 세웠다.
○二年, 春正月, 以<急利>爲阿 , 委以政要, 兼知內外兵馬事. 二月, 親杞{祀} 始祖廟.
趙炳舜. 『三國史節要』.
2년 봄 정월에 급리를 아찬으로 삼아 중요한 정사를 맡기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2월, 왕이 시조묘에 직접 제사를 지냈다.
○三年, 春三月, <倭>國王遣使, 爲子求婚, 以阿 <急利>女送之.
3년 봄 3월, 왜국 왕이 사신을 보내 자기 아들의 혼처를 요청하자, 아찬 급리의 딸을 보냈다.
○四年, 秋七月, 旱. 蝗. 民飢, 發使救恤之.
4년 가을 7월,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백성들이 굶주리자 특사를 보내 그들을 구제하도록 하였다.
○五年, 春正月, 拜阿 <急利>爲伊 . 二月, 重修官{宮} 闕, 不雨乃止.
趙炳舜. 『三國史節要』.
5년 봄 정월, 아찬 급리를 이찬으로 임명하였다.
2월, 궁궐을 중수하였는데, 비가 오지 않으므로 이를 중단하였다.
○八年, 春夏旱. 王親錄囚, 多原之.
8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왕이 직접 죄수를 재심사하여 많이 석방하였다.
○九年, 春二月, 下令: 向以旱災, 年不順成. 今則土膏 起{土脈膏起} , 農事方始, 凡所勞民之事, 皆停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9년 봄 2월에 왕이 "지난 해에는 가뭄으로 농사가 잘 되지 못하였다. 이제 땅이 기름지고 생기가 돌아 농사가 바야흐로 시작되었으니 백성들을 노역시키는 일을 모두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二十一年, 始開<碧骨池>, 岸長一千八百步.
21년, 처음으로 벽골지에 물을 대기 시작하였다. 둑의 길이가 1천 8백 보였다.
○二十八年, 春二月, 遣使聘<百濟>. 三月, 雨雹. 夏四月, 隕霜.
28년 봄 2월 사신을 보내 백제를 예방하였다.
3월, 우박이 내렸다.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三十五年, 春二月, <倭>國遣使請婚, 辭以女旣出嫁. 夏四月, 暴風拔宮南大樹.
35년 봄 2월, 왜국이 사신을 보내 청혼하였으나, 딸이 이미 출가하였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여름 4월, 폭풍이 불어 대궐 남쪽의 큰 나무가 뽑혔다.
○三十六年, 春正月, 拜<康世>爲伊伐 . 二月, <倭>王移書絶交.
36년 봄 정월, 강세를 이벌찬에 임명하였다.
2월, 왜왕이 절교한다는 글을 보내왔다.
○三十七年, <倭>兵猝至<風島>, 抄掠邊戶, 又進圍<金城>急攻. 王欲出兵相戰, 伊伐 <康世>曰: "賊遠至, 其鋒不可當, 不若緩之, 待其師老." 王然之, 閉門不出. 賊食盡將退, 命<康世>率勁騎追擊, 走之.
37년, 왜병이 갑자기 풍도에 와서 변경의 민가를 약탈하고, 또한 금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왕은 군사를 보내 전투를 벌이려 하였다. 그러나 이벌찬 강세가 말했다. "적병이 멀리서 왔으니 그 예봉을 당할 수 없습니다. 공격 시간을 늦추어 그들이 피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왕이 그렇다고 생각하여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적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퇴각하려 하였다. 이 때 왕이 강세로 하여금 강한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게 하여 그들을 격퇴하였다.
○三十九年, 宮井水暴溢.
39년, 대궐 우물이 솟아 넘쳤다.
○四十一年, 春三月, 巢<月城>隅. 夏四月, 大雨浹旬, 平地水(+深) 三四尺, 漂沒官私屋舍, 山崩十三{三十} 所.
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 新本.
41년 봄 3월, 황새가 월성 모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여름 4월, 큰 비가 열흘 동안 내려 평지에 물이 서너 자씩 고이고, 관가와 민가가 유실되거나 물에 잠기고, 산이 열 세 군데 무너졌다.
○四十七年, 夏四月, 王薨.
三國史記卷第二.
47년 여름 4월, 왕이 별세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 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