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西林{材} 場判官儒林郞尙衣直長同正
臣 <崔 祐甫>
考文林郞國學學諭禮賓丞同正 臣 <李 黃中>
考儒林郞前國學學正 臣 <朴 東桂{朴 東柱}>
考儒林郞金吾衛錄事 軍事 臣 <徐 安貞>
考文林郞守宮署令兼直史館 臣 <許 洪材>
考將仕郞分司司宰注簿 臣 <李 溫文>
考文林郞試掌治{冶} 署令兼寶文閣校勘
臣 <崔 山甫>
編修輸忠定難靖國贊化同德{同德贊化} 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守大保門下侍中判尙書吏禮部事集賢殿太學士監修國史上柱國致仕
臣 <金 富軾>
同管句內侍寶文閣校勘將仕郞尙食直長同正 臣 <金 忠孝>
管句右丞{承} 宣尙書工部侍郞翰林侍講學士知制誥
臣 <鄭 襲明>
府使嘉善大夫兼管內勸農防禦使 臣 <金 居斗>
權知經歷前奉正大夫三司左咨議 臣 <崔 得 >
嘉靖大夫慶尙道都觀察陟黜使兼監倉安集轉輸勸農管學事提調刑獄兵馬公事同知中樞院事
臣 <閔 開>
趙炳舜. 『高麗朝刊殘本三國史記』.趙炳舜. 『高麗朝刊殘本三國史記』.趙炳舜. 『高麗朝刊殘本三國史記』.趙炳舜. 『高麗史』.趙炳舜.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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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민 개
○三國史印本之在< 林>者, 歲久而泯, 世以寫本行. 按廉使<沈>公<孝生>得一本, 與前府使<陳>公<義貴>圖所以刊行, 於癸酉七月, 下牒于府. 八月, 始 諸梓, 未幾, 二公見代. 余以其年冬十月至府, 承觀察使<閔>相公之命, 因繼其志, 乃助之施令, 工不斷手, 至甲戌夏四月告成. 嗚呼! 指揮能事, 以至於成, 惟三公是賴, 余何力之有焉? 但具事之終始, 書于卷末耳. 府使嘉善大夫<金居斗>跋.
[삼국사기] 영인본으로서 경주에 보관되어 있던 것은 세월이 흘러 없어지고, 세상에는 사본이 전해지고 있었다. 안렴사 심공 효생이 영인본 한 권을 구하여 이전의 부사 진공 의귀와 이의 간행 문제를 의논하고, 계유년 7월에 경주부에 통첩을 내렸다. 8월에 각판을 시작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이 관직을 옮기게 되었다. 나는 그 해 겨울 10월 경주부에 부임하였다. 나는 관찰사 민 상공의 지시를 받고, 두 분의 뜻을 계승하기 위하여 이 일의 실행을 명령하였고 중단없이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일은 갑술년 여름 4월에 완성되었다. 아아! 이 사업을 지휘하여 진행하도록 하고 완성에 이르게 한 것은, 오직 위 세 분에게서 힘입은 것이니,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으랴? 다만 일의 전말을 모아 이 책의 말미에 기록이나 할 뿐이다.
부사가선대부 김 거두가 발문을 쓰다.
○吾東方三國本史·遺事兩本, 他無所刊, 而只在本府. 歲久 缺, 一行可解僅四五字. 余惟士生斯世, 歷觀諸史, 其於天下治亂興亡, 與諸異跡, 尙欲博識, 況居是邦, 不知其國事, 可乎! 因欲改刊, 廣求完本, 閱數載不得焉. 其曾罕行于世, 人未易得見, 可知若今不改則將爲失傳. 東方往事, 後學竟莫聞知, 可歎也已. 幸吾斯文<星州>牧使<權>公<輳>, 聞余之求, 求得完本送余, 余喜受, 具告監司<安>相國< >·都事<朴>候<佺>, 僉曰善. 於是, 分刊列邑, 令還藏于本府. 噫! 物久則必有廢, 廢則必有興, 興而廢, 廢而興, 是理之常. 知理之常, 而有時興, 以永其傳, 亦有望於後來之惠學者云.
皇明<正德>壬申季冬, 府尹推誠定難功臣嘉善大夫<慶州>鎭兵馬節制使全平君<李繼福>謹跋.
生員 <李 山甫>
校正生員 <崔 起潼>
中訓大夫慶州府判官慶州鎭兵馬節制都尉 <李 瑠>
奉直郞守慶尙道都事 <朴 佺>
推誠定難功臣嘉靖大夫慶尙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安 >
우리 동방의 삼국 본사와 유사 두 책은 다른 곳에서는 간행되지 않았고 오직 본 경주부에만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되자 마멸되고 낙장이 생겨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한 줄에 겨우 너댓 자 밖에 없었다. 내가 선비로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역사 서적들을 보아가며, 천하의 흥망성쇠와 기이한 역사의 흔적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자 하거늘,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이 나라의 사적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이러한 뜻으로 이 책을 다시 간행하기 위하여 완전한 판본을 널리 구하였으나, 수 년이 지나도록 얻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예전부터 세상에 많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쉽사리 얻어 볼 수 없었다. 따라서 만약 지금이라도 복각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완전히 없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나라의 지난 사적을 후학들이 필경 알 수 없을 것이니 이는 대단히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 나의 선배인 성주목사 권공 주는 내가 이 책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한 책을 얻어 나에게 보내 주었다. 내가 이를 반가이 받아들고, 감사 안 상국 당과 도사 박 후 전에게 고하였더니 모두 이의 복각에 찬성하였다. 이렇게 되어 여러 고을에 판각 사업을 분담시키고, 판각이 완성되는대로 경주부에 보내 보관토록 하였다. 아아! 사물이란 오래되면 반드시 없어지고, 없어지면 반드시 생기는 것이니, 생겼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 당연한 이치를 알아서 어느 시기엔가 이러한 사업이 다시 진행되어 이 책이 영원히 전해지기를, 훗날의 지혜로운 학자에게 기대한다.
명 정덕 임신년 섣달에 부윤추성정난공신가선대부경주진병마 절제사전평군 이 계복이 삼가 발문을 쓰다.
생원 이 산보
교정생원 최 기동
중훈대부경주부판관경주진병마절제도위 이 유
봉직랑수경상도도사 박 전
추성정난공신가정대부경상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 안 당
進三國史表.
○臣<富軾>言: 古之列國, 亦各置史官, 以記事. 故<孟子>曰: "<晉>之『乘』, <楚>之『 』, <魯>之『春秋』, 一也." 惟此海東三國, 歷年長久, 宜其事實著在方策. 乃命老臣, 之編集, 自顧缺爾, 不知所爲. 伏惟聖上陛下, 性<唐堯>之文思, 體<夏禹>之勤儉, 宵 餘閑, 博覽前古. 以爲今之學士大夫, 其於五經諸子之書, <秦><漢>歷代之史, 或有淹通而詳說之者, 至於吾邦之事, 却茫然不知其始末, 甚可嘆也. 況惟<新羅>氏·<高句麗>氏·<百濟>氏, 開基鼎峙, 能以禮通於<中國>. 故<范曄>『漢書』·<宋祁>『唐書』, 皆有列傳. 而詳內略外, 不以具載. 又其古記, 文字蕪 , 事迹闕亡. 是以君后之善惡, 臣子之忠邪, 邦業之安危, 人民之理亂, 皆不得發路以垂勸戒. 宜得三長之才, 克成一家之史, 貽之萬世, 炳若日星. 如臣者, 本非長才, 又無奧識. 至遲暮, 日益昏蒙, 讀書雖勤, 淹卷卽忘, 操筆無力, 臨紙難下. 臣之學術, 蹇淺如此, 而前言往事, 幽昧如彼, 是故疲精竭力, 僅得成編, 訖無可觀, 祗自愧耳. 伏望聖上陛下, 諒狂簡之裁, 赦妄作之罪. 雖不足藏之名山, 庶無使 之醬 . 區區妄意, 天日照臨.
삼국사기를 올리는 글
신 부식은 아뢰나이다. 옛날의 열국에서도 각각 사관을 두어 사적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진 나라의 [승], 초나라의 [도올], 노 나라의 [춘추]는 똑같은 역사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해동 삼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으니, 그 사적들이 책으로 저술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리하여 이 늙은 신하에게 편집의 명을 내리셨으나 저의 부족한 역량을 생각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상 폐하의 품성은 요 임금의 경륜과 사상을 타고 나셨으며, 몸은 우 임금의 근검을 얻었으니, 아침 저녁의 여가에 옛날의 사적들을 널리 섭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학자와 관리들 가운데 오경 제자의 서적과 진·한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통하여, 이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우리 나라의 사적에 대해서는 그 전말을 알지 못하니 이는 심히 개탄할 일이라고 생각하시게 되었습니다. 황차 신라·고구려·백제는 개국 때부터 삼국으로 우뚝 솟았고, 중국과는 예의로 관계를 맺어올 수 있었습니다. 범 엽의 [한서]와 송 기의 [당서]에는 모두 열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는 중국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있지만, 외국에 대해서는 소략하게 다루어 상세한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삼국의 고기는 문장이 거칠고 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적들이 누락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임금과 왕후의 선악, 신하의 충성과 간사함, 국가 사업의 평안과 위기, 백성의 안녕과 혼란에 관한 사실들이 후세에 교훈으로 전하여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재능와 학문과 견식을 겸비한 인재를 찾아 권위있는 역사서를 완성하여 자손만대에 전함으로써 우리의 역사가 해와 별 같이 빛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은 원래 훌륭한 인재도 아니며, 심오한 지식도 갖추지 못한 데다가, 나이들어서는 나날이 정신이 혼미하여 책을 열심히 읽어도 덮고나면 바로 잊어 버리며, 붓을 잡기에도 힘이 들어 종이를 대하면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소신의 학문이 이와 같이 천박하고, 옛 말과 지난 일에 대해서 몽매하기가 또한 이와 같았기에, 소신은 정기와 힘을 모두 기울여서야 간신히 이 책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게 되었으니 스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바라옵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좋은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채 뜻만 높았던 점을 양해하여 주시고, 잘못 기록한 한 죄가 있다면 그것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 책이 비록 명산의 史庫에 보관될 가치는 없을지라도 버리는 종이로 사용되지 않게하여 주시옵고, 숨어 버리고 싶은 망령된 이 심정에 햇빛으로 밝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출처:진갑곤의 한자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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