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삼국유사 발문 삼국유사 발문 ------------------------------------------------------------------------------------- 발문(跋文) 우리 동방 삼국(三國)의 본사(本史)나 유사(遺事) 두 책이 딴 곳에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에만 있었다. 세월이 오래 되매 완결(완缺)되어 한 줄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겨우 4, 5 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여러 역사책을 두루 보고 천하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 그리고 모든 이상한 사적에 대해서 오히려 그 견식을 넓히려 하는 것인데,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일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에 이 책을 다시 간행하려 하여 완본(完本)을 널리 구하기를 몇 해.. 더보기 삼국유사 제 8권 전문 효선 제 9 ------------------------------------------------------------------------------------- 효선(孝善) 제9 진정사(眞定師) 효선쌍미(孝善雙美) 법사(法師) 진정(眞定)은 신라 사람이다. 속인(俗人)으로 있을 때 군대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집이 가난해서 장가를 들지 못했다. 군대 복역의 여가에는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서 홀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집안의 재산이라고는 오지 다리 부러진 솥 하나뿐이었다. 어느날 중이 문간에 와서 절을 지을 쇠붙이를 구하므로 어머니가 솥을 시주했는데 이윽고 진정이 밖에서 돌아오자 어머니는 그 사실을 말하고 또한 아들의 생각이 어떤가를 살피니, 진정이 기쁜 안색을 나타내며 말했다. "불사(佛事)에 시주하는 것이.. 더보기 삼국유사 제 7권 전문 삼국유사 제 5권 피은 제 8 ------------------------------------------------------------------------------------- 피은(避隱) 제 8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 삽량주(삽良州) 아곡현(阿曲縣)의 영취산(靈鷲山; 삽량삽良은 지금의 양주梁州. 아곡阿曲의 곡曲은 서西로도 쓰며 혹은 구불球佛 또는 굴불屈佛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울주蔚州에 굴불역屈佛驛을 두었으나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있다)에 이상한 중이 있었다. 암자에 살기 수십 년이 되었어도 고을에서 모두 그를 알지 못하였고, 스님도 또한 성명을 말하지 않았다. 항상 을 강론하여 신통력이 있었다. 용삭(龍朔) 초년에 지통(智通)이란 중이 있었는데, 그는 본래 이량공(伊亮公)의 집 .. 더보기 삼국유사 제 6권 전문 신주 제 6 ------------------------------------------------------------------------------------- 신주(神呪) 제 6 밀본최사(密本최邪) 선덕왕(善德王) 덕만(德慢)이 병이 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興輪寺)의 승려 법척(法척)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병을 치료했으나 오래 되어도 효력이 없었다. 이때 밀본법사(密本法師)의 덕행(德行)이 나라 안에 소문이 퍼져서 좌우 신하들이 바꾸기를 청했다. 왕은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이니 밀본은 신장(宸仗) 밖에서 약사경(藥師經)을 읽었다. 경을 다 읽고 나자 가졌던 육환장(六環杖)이 침실 안으로 날아 들어가더니 늙은 여우 한 마리와 중 법척(法척)을 찔러서 뜰 아래에 거꾸로 내던지니 왕의 병은 이.. 더보기 삼국유사 제 5권 전문 의해 제 5 ------------------------------------------------------------------------------------- 의해(意解) 제5 원광서학(圓光西學) 제13권에 실려 있는 말이다. 신라 황륭사(皇隆寺)의 중 원광(圓光)의 속성(俗姓)은 박씨(朴氏)이다. 본래 삼한(三韓), 즉 변한(卞韓)·진한(辰韓)·마한(馬韓)에 살았으니, 원광은 곧 진한 사람이다. 대대로 해동(海東)에 살아 조상의 풍습(風習)이 멀리 계승되었다. 그는 도량(道量)이 넓고 컸으며, 글을 즐겨 읽어 현유(玄儒)를 두루 공부하고 자사(子史)도 연구하여 글 잘한다는 이름을 삼한(三韓)에 떨쳤다. 그러나 넓고 풍부한 지식은 오히려 중국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여 드디어 친척과 벗들을 작별하고.. 더보기 삼국유사 제 4권 전문 탑상 제 4 ------------------------------------------------------------------------------------- 탑상(塔像) 제 4 가섭불연좌석(迦葉佛宴坐石) 과 , 그리고 여러 사람의 전기에는 모두 이렇게 말했다. "신라 월성(月城) 동쪽, 용궁(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이것은 곧 전불(前佛) 때의 절터이며, 지금 황룡사(皇龍寺) 터는 곧 일곱 절의 하나이다." 를 상고하면, 진흥왕 즉위 14년 개국(開國) 3년 계유(癸酉; 553) 2월에 동쪽에 신궁(新宮)을 세웠는데 여기에서 황룡(皇(黃)龍)이 나타났으므로 왕은 이것을 의심해서, 고쳐서 황룡사(皇(黃)龍寺)라 했다. 연좌석은 불전(佛殿) 후면(後面)에 있었다. .. 더보기 삼국유사 제 3권 전문 삼국유사 제 3권 홍법 제 3 ------------------------------------------------------------------------------------- 제 3권 흥법(興法) 제 3 순도조려(順道肇麗: 도공道公의 다음에 또한 법심法深, 의연義淵, 담엄曇嚴의 무리들이 서로 계승해서 불교佛敎를 일으켰으나 고전古傳에는 기록記錄이 없으므로 감히 그 사실을 순서에 넣어 편찬하지 못한다. 자세한 것은 에 있다.) 에 이렇게 말했다. "소수림왕(小獸林王)이 즉위한 2년 임신(壬申; 372)은 곧 동진(東晉) 함안(咸安) 2년이며,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해이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시켜서 불상(佛像)과 경문(經文)을 보내고(이때 부견符堅은 관중關中, .. 더보기 삼국유사 제 2권 전문 삼국유사 제 2권 기이 제 2 ------------------------------------------------------------------------------------- 제 2권 기이(紀異) 제2 문호왕(文虎(武)王) 법민(法敏) 왕이 처음 즉위한 용삭(龍朔) 신유(辛酉; 661)에 사자수(泗차水) 남쪽 바닷속에 한 여자의 시체(屍體)가 있는데, 키는 73척, 발의 길이는 6척, 음문(陰門)의 길이가 3척이었다. 혹은 말하기를 키가 18척이며 건봉(乾封) 2년 정묘(丁卯; 667)의 일이라고 했다. 총장(總章) 무진(戊辰; 668)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인문(仁問)·흠순(欽純) 등과 함께 평양(平壤)에 이르러 당(唐)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고구려(高句麗)를 멸망시켰다. 당나라 장수 이적(李.. 더보기 삼국유사 1권 전문 삼국유사 (三國遺事) 출처:직지 프로젝트 삼국유사 해제 는 와 함께 현존하는 우리 고대(古代) 사적(史籍)의 쌍벽으로 일컬어져 온다. 는 왕명(王命)에 의하여 사관(史官)이 저술한 정사(正史)로서, 체재(體裁)가 정연하고 문사(文辭)가 유창하고 화려하다. 이에 비하여 는 선사(禪師) 한 개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야사(野史)로서, 체재가 짜여지지 못했고 문사 또한 박잡(駁雜)하다 하겠다. 그러나 는 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많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는 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史書)이지만, 그 밖에 고조선·기자 및 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오늘날 우리들로 하여금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수 있고, 단군을 국..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