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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원문+한글) 권 제 15


三國史記卷第十五 삼국사기 권 제 15

高句麗本紀第三 <太祖大王> ·<次大王>.

趙炳舜. 『三國史節要』.
고구려본기 제 3  태조대왕, 차대왕.

   <太祖大王 태조대왕>

○<太祖大王{大祖大王}> [或云<國祖王>.], 諱<宮>, 小名<於漱>, <&琉璃王{瑠璃明王}> 子古鄒加<再思>之子也. 母大后{太后} , <扶餘>人也. <慕本王>薨, 太子不肖, 不足以主社稷, 國人迎<宮>繼立. 王生而開目能視, 幼而岐 . 以年七歲, 大后{太后} 垂簾聽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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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대왕[국조왕이라고도 한다.]의 이름은 궁이고, 아명은 어수이다. 그는 유리왕의 아들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고, 어머니 태후는 부여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었으나, 태자가 불초하여 나라를 맡을 수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궁을 맞이하여 모본왕에 이어 왕으로 삼았다. 왕은 태어 나면서 눈을 뜨고 볼 수 있었으며, 어린 나이에도 출중한 면모가 보였다. 그러나 이 때 나이 7세였기 때문에 태후가 수렴청정 하였다.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秋八月, 國南, 蝗害穀.

3년 봄 2월,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서 한 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가을 8월, 남쪽 지방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

○四年, 秋土{七} 月, 伐<東沃沮>, 取其土地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趙炳舜. 『三國史節要』.
4년 가을 7월,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빼앗아 성읍을 만들어 국경을 개척하였으니, 동으로는 동해, 남으로는 살수에 이르렀다.

○七年, 夏四月, 王如<孤岸淵>, 觀魚, 釣得赤翅白魚. 秋七月, 京都大水, 漂沒民屋.

7년 여름 4월, 왕이 고안연에 가서 낚시를 하다가 날개가 붉은 백어를 낚았다.
가을 7월, 서울에 홍수가 나서 가옥이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 갔다.

○十年, 秋八月, 東獵, 得白鹿. 國南, 飛蝗害穀.

10년 가을 8월, 동쪽 지방에서 사냥을 하여 흰 사슴을 잡았다.
남쪽 지방에 날아다니는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

○十六年, 秋八月, <曷思王>孫<都頭>, 以國來降. 以<都頭>爲于台. 冬十月, 雷.

16년 가을 8월, 갈사왕의 손자 도두가 항복해왔다. 도두를 우태로 삼았다.
겨울 10월, 우레가 있었다.

○二十年, 春二月, 遣<貫那部>沛者<達賈>, 伐<藻那>, 虜其王. 夏四月, 京都, 旱.

20년 봄 2월, 관나부 패자 달가를 보내 조나를 치고, 그 왕을 사로 잡았다.
여름 4월, 서울에 가뭄이 들었다.

○二十二年, 冬十月, 王遣<桓那部>沛者<薛儒>, 伐<朱那>, 虜其王子<乙音>, 爲古鄒加.

22년 겨울 10월, 왕이 환나부 패자 설유를 보내 주나를 치고, 그 왕자 을음을 사로잡아 고추가를 삼았다.

○二十五年, 冬十月, <扶餘>使來, 獻三角鹿·長尾免{兎} , 王以爲瑞物, 大赦. 十一月, 京都, 雪三尺.

趙炳舜. 『三國史節要』.
25년 겨울 10월, 부여의 사신이 와서 뿔이 셋 달린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다. 왕이 이를 상서로운 것이라 하여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11월, 서울에 눈이 3자 내렸다.

○四十六年, 春三月, 王東巡<柵城>, 至<柵城>西< 山>, 獲白鹿. 及至<柵城>, 與群臣宴飮, 賜<柵城>守吏物段有差, 遂紀功於岩, 乃還. 冬十月, 王至自<柵城>.

46년 봄 3월, 왕이 동쪽 책성으로 가는 도중에, 책성 서쪽 계산에 이르러 흰 사슴을 잡았다. 책성에 도착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술을 마시면서, 책성 관리들에게 물품을 정도에 따라 하사하였다. 그들의 공적을 바위에 새기고 돌아왔다. 겨울 10월, 왕이 책성에서 돌아왔다.

○五十年, 秋八月, 遣使安撫<柵城>.

50년 가을 8월, 사신을 보내 책성의 백성들을 위무하였다.

○五十三年, 春正月, <扶餘>使來, 獻虎, 長丈二, 毛色甚明而無尾. 王遣將入<漢><遼東>, 奪掠六縣. 太守<耿夔>出兵拒之, 王軍大敗. 秋九月, <耿夔>擊破<貊>人.

53년 봄 정월, 부여 사신이 와서 호랑이를 바쳤는데, 길이가 1장 2척이며, 털 빛깔은 환하고, 꼬리가 없었다. 왕이 한 나라 요동에 장수를 보내 여섯 개 현을 약탈하게 하였다. 요동 태수 경 기가 군사를 동원하여 대항하였다. 왕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가을 9월, 경 기가 맥인을 격파하였다.

○五十五年, 秋九月, 王獵<質山>陽, 獲紫獐. 冬十月, <東海谷>守獻朱豹, 尾長九尺.

55년 가을 9월, 왕이 질산 남쪽에서 사냥하다가 자줏빛 노루를 잡았다.
겨울 10월, 동해곡 수령이 붉은 표범을 바쳤다. 그 표범의 꼬리가 아홉 자였다.

○五十六年, 春大旱, 至夏赤地. 民饑, 王發使賑恤.

56년 봄에 가뭄이 들었다. 여름이 되자 땅이 붉게 변했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五十七年, 春正月, 遣使如<漢>, 賀<安帝>加元服.

57년 봄 정월, 한 나라에 사신을 보내 안제의 성년식을 축하하였다.

○五十九年, 遣使如<漢>, 貢獻方物, 求屬<玄 >.[『通鑑』言: "是年三月, <麗>王<宮>與<穢貊>, 寇<玄 >." 不知或求屬或寇耶, 抑一誤耶?].

59년, 한 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현토에 소속되기를 요구하였다.[[통감]에는 "이 해 3월, 고구려왕 궁이 예맥과 함께 현토를 침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편으로는 속하기를 원하고, 다른 편으로는 침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느 한 쪽이 잘못 기록한 것인가?]

○六十二年, 春三月, 日有食之. 秋八月, 王巡守南海. 冬十月, 至自南海.

62년 봄 3월, 일식이 있었다.
가을 8월, 왕이 남해를 순행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남해에서 돌아왔다.

○六十四年, 春三月, 日有食之. 冬十二月, 雪五尺.

64년 봄 3월, 일식이 있었다.
겨울 12월, 눈이 다섯 자 내렸다.

○六十六年, 春二月, 地震. 夏六月, 王與<穢貊>襲<漢><玄 >, 攻<華麗城>. 秋七月, 蝗雹, 害穀. 八月, 命所司, 擧賢良孝順, 問鰥寡孤獨及老不能自存者, 給衣食.

66년 봄 2월, 지진이 있었다. 여름 6월, 왕이 예맥과 함께 한 나라 현토를 습격하여 화려성을 쳤다. 가을 7월, 메뚜기 떼가 생기고 우박이 내려 곡식이 상하였다. 8월, 해당 관청에 명령하여 선량한 사람, 효성스런 사람, 온순한 사람들을 천거하게 하고,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과 늙어서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자들을 조사하여,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게 하였다.

○六十九年, 春, <漢><幽州>刺史<馮煥>·<玄 >大守<姚光>·<遼東>太守<蔡諷{蔡風}> 等, 將兵來侵, 擊殺<穢貊>渠帥, 盡獲兵馬財物. 王乃遣弟<遂成>, 領兵二千餘人, 逆<煥>·<光>等. <遂成>遣使詐降, <煥>等信之. <遂成>因據險以遮大軍, 潛遣三千人, 攻<玄 >·<遼東>二郡, 焚其城郭, 殺獲二千餘人. 夏四月, 王與<鮮卑>八千人, 往攻<遼隊縣{遼隧縣}> . <遼東>太守<蔡諷{蔡風} >, 將兵出於<新昌>, 戰沒. 功{兵} 曹 <龍端>·兵馬 <公孫 >, 以身 <諷>, 俱沒{歿} 於陣, 死者百餘人. 冬十月, 王幸<扶餘>, 杞{祀} 大后{太后} 廟. 存問百姓窮困者, 賜物有差. <肅愼>使來, 獻紫狐 及白鷹·白馬, 王宴勞以遣之. 十一月, 王至自<扶餘>. 王以<遂成>統軍國事. 十二月, 王率<馬韓>·<穢貊>一萬餘騎, 進圍<玄 城>. <扶餘>王遣子<尉仇台>, 領兵二萬, 與<漢>兵幷力拒戰, 我軍大敗.

李丙燾. [魏志].李丙燾. [魏志].허성도.李丙燾. [後漢書].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69년 봄, 한 나라 유주 자사 풍 환·현토 태수 요 광·요동 태수 채 풍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예맥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병기와 마필과 재물을 모두 약탈하였다. 왕이 아우 수성에게 군사 2천여 명을 주어서, 풍 환·요 광 등과 싸우게 하였다. 수성이 한 나라 군영에 사자를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겠다고 말했다. 풍 환 등은 이 말을 믿었다. 수성이 곧 험한 곳에 의지하여 대군을 막는 한편 비밀리에 군사 3천 명을 보내 현토·요동의 두 군을 공격하여, 그 성곽을 불지르고 2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다.
여름 4월, 왕이 선비의 군사 8천 명과 함께 요대현을 공격하였다. 요동 태수 채 풍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창에 나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공조연 용 단과 병마연 공손 포는 자신의 몸으로 채 풍을 엄호하다가, 채 풍과 함께 진영에서 죽었다. 이 때 사망자가 백여 명이었다.
겨울 10월, 왕이 부여에 행차하여 태후묘에 제사를 지내고, 곤궁한 처지에 있는 백성들을 위문하고, 정도에 따라 물품을 주었다. 숙신의 사신이 와서 자줏빛 여우 갖옷과 흰 매와 흰 말을 바쳤다. 왕이 연회를 베풀어 노고를 위로하여 보냈다. 11월, 왕이 부여에서 돌아왔다. 왕이 아우 수성으로 하여금 군사와 국정에 대한 일을 총괄적으로 맡아보게 하였다.
12월, 왕이 마한과 예맥의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현토성을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를 시켜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한 나라 군사와 힘을 합쳐 대항케 하였다.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七十年, 王與<馬韓>·<穢貊>侵<遼東>, <扶餘>王遣兵救破之.[<馬韓>以<百濟><溫祚王>二十七年, 滅, 今與<麗>王行兵者, 盖滅而復興者歟?]

70년, 왕이 마한·예맥과 함께 요동을 공격하였다. 부여왕이 군사를 파견하여 한 나라를 구원하고,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였다.[마한은 백제 온조왕 27년에 멸망하였는데, 지금 고구려왕과 함께 군사 행동을 하였다 하니, 멸망하였다가 다시 일어난 것인가?]

○七十一年, 冬十月, 以沛者<穆度婁>爲左輔, <高福 {高福章}> 爲右輔, 令與<遂成>參政事.

趙炳舜. 『三國史節要』.
71년 겨울 10월, 패자 목도루를 좌보로 삼고, 고복장을 우보로 삼아, 수성과 함께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七十二年, 秋九月庚申晦, 日有食之. 冬十月, 遣使入<漢>朝貢. 十一月, 京都地震.

72년 가을 9월 그믐 경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10월, 한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11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八十年, 秋七月, <遂成>獵於<倭山>, 與左右宴. 於是, 貫那于台<彌儒>·桓那于台< 支留>·沸流那 衣<陽 {陽神}> 等, 陰謂<遂成>曰: "初, <慕本>之薨也, 太子不肯{肖} , 群寮欲立王子<再思>, <再思>以老讓子者, 欲使兄老弟及. 今王旣已老矣, 而無讓意, 惟吾子計之." <遂成>曰: "承襲必嫡, 天下之常道也. 王今雖老, 有嫡子在, 豈敢  乎?" <彌儒>曰: "以弟之賢, 承兄之後, 古亦有之, 子其勿疑." 於是, 左輔沛者<穆度婁>, 知<遂成>有異心, 稱疾不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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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가을 7월, 수성이 왜산에서 사냥을 하며 좌우의 근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이 때 관나부 우태 미유와 환나부 우태 어지류와 비류나조의 양신 등이 남모르게 수성에게 말했다. "초기에 모본왕이 죽었을 때, 태자가 불초하여 여러 신하들이 왕자 재사를 왕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재사가 늙었다 하여 아들에게 양보하였다. 이는 형이 늙으면 아우에게 계승케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왕이 이미 늙었으나 양위할 뜻이 없으니, 그대는 대책을 세우라." 수성이 말했다.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천하의 상도이다. 왕이 지금 비록 연로하다고 하지만 맏아들이 있는데 어찌 감히 왕위를 넘볼 수 있겠는가?" 미유가 말했다. "아우가 현명하면 형의 뒤를 잇는 일이 옛날에도 있었다. 그대는 이를 의심치말라." 이 때 좌보 패자 목도루는 수성이 왕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음을 알고, 병을 구실로 벼슬을 하지 않았다.

○八十六年, 春三月, <遂成>獵於<質>陽, 七日不歸, 戱樂無度. 秋七月, 又獵<箕丘>, 五日乃反. 其弟<伯固>諫曰: "禍福無門, 惟人所召. 今子以王弟之親, 爲百寮之首, 位已極矣, 功亦盛矣. 宜以忠義存心, 禮讓克己, 上同王德, 下得民心. 然後富貴不離於身, 而禍亂不作矣. 今不出於此, 而貪樂忘憂, 竊爲足下危之." 答曰: "凡人之情, 誰不欲富貴而歡樂者哉, 而得之者, 萬無一耳. 今吾居可樂之勢, 而不能肆志, 將焉用哉." 遂不從.

86년 봄 3월, 수성이 질산 남쪽에서 사냥하며 7일 동안 돌아오지 않고, 즐기기만 할 뿐 행동에 절도가 없었다.가을 7월, 수성이 또 기구에 사냥가서 5일 만에 돌아왔다. 그의 아우 백고가 간했다. "화복은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불러 들이는 것이다. 지금 형은 왕의 아우라는 친족으로서 백관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지위는 이미 지극히 높고, 공로도 또한 훌륭하다. 따라서 마땅히 충성과 의리를 마음에 간직하고, 예절과 겸양으로 욕망을 억제하여, 위로는 왕의 덕과 같도록 노력하고, 아래로는 민심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한 뒤에야 부귀가 형을 떠나지 않고 화란이 일어 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렇게 행동하지 않고, 향락에 빠져 걱정을 모르고 있으니, 형이 위태롭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수성이 대답했다. "사람의 감정으로 누구인들 부귀와 환락을 원하지 않으랴만 이것을 얻는 자는 만 명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내가 향락을 즐길 수 있는 처지에 있으니,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면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는 끝내 백고의 말을 듣지 않았다.

○九十年, 秋九月, <丸都>地震. 王夜夢, 一豹齧斷虎尾. 覺而問其吉凶, 或曰: "虎者, 百獸之長; 豹者, 同類而小者也. 意者王之族類, 殆有謀絶大王之後者乎?" 王不悅, 謂右輔<高福章>曰: "我昨夢有所見, 占者之言如此, 爲之奈何?" 答曰: "作不善, 則吉變爲凶; 作善, 則災反爲福. 今大王憂國如家, 愛民如子, 雖有小異, 庸何傷乎?"

90년 가을 9월, 환도에 지진이 있었다. 왕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표범이 호랑이의 꼬리를 물어 끊었다. 왕이 잠을 깨어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를 물으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호랑이는 모든 짐승의 어른이며, 표범은 호랑이의 한 종류로서 작은 짐승이다. 아마도 왕의 친족 가운데 대왕의 후대를 끊으려고 획책하는 자가 있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왕이 기분이 좋치않아 우보 고 복장에게 "내가 어제 밤 꿈에 본 것에 대하여, 점치는 자의 말이 이러하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고 물었다. 고 복장이 대답하였다. "안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것도 변하여 나쁜 것이 되고, 좋은 일을 하면, 재앙도 도리어 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왕께서 나라 일을 집안 일과 같이 걱정하며, 백성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시니, 비록 사소한 이변이 있다한들 무슨 걱정거리가 되겠습니까?"

○九十四年, 秋七月, <遂成>獵於<倭山>之下, 謂左右曰: "大王老而不死, 吾齒卽將暮矣, 不可待也. 惟願左右, 爲我計之." 左右皆曰: "敬從命矣." 於是, 一人獨進曰: "向, 王子有不祥之言, 而左右不能直諫, 皆曰敬從命者, 可謂姦且諛矣. 吾欲直言, 未知尊意如何?" <遂成>曰: "子能直言, 藥石也, 何疑之有?" 其人對曰: "今大王之賢, 內外無異心, 子雖有功, 率群下姦諛之人, 謀廢明上, 此何異將以單縷, 繫萬鈞之重而倒曳乎? 雖復愚人, 猶知其不可也. 若王子改圖易慮, 孝順事上, 則大王深知王子之善, 必有揖讓之心, 不然則禍將及也." <遂成>不悅. 左右妬其直, 讒於<遂成>曰: "王子以大王年老, 恐國祚之危, 欲爲後圖, 此人妄言如此, 我等惟恐漏洩, 以致患也, 宜殺以滅口." <遂成>從之. 秋八月, 王遣將, 襲<漢><遼東>西<安平縣>, 殺<帶方>令, 掠得<樂浪>大守{太守} 妻子. 冬十月, 右輔<高福章>言於王曰: "<遂成>將叛, 請先誅之." 王曰: "吾旣老矣, <遂成>有功於國, 吾將禪位, 子無煩慮!" <福章>曰: "<遂成>之爲人也, 忍而不仁. 今日受大王之禪, 則明日害大王之子孫. 大王但知施惠於不仁之弟, 不知貽患於無辜之子孫(+乎) , 願大王熟計之."(+王不聽)  十二月, 王謂<遂成>曰: "吾旣老, 倦於萬機. 天之曆數在汝躬, 況汝內參國政, 外摠軍事, 久有社稷之功, 允塞臣民之望, 吾所付託, 可謂得人. 作{汝} 其卽位, 永孚于休!" 乃禪位, 退老於別宮, 稱爲<大祖大王>.[『後漢書』云: "<安帝><津光{建光}> 元年, <高句麗>王<宮>死, 子<遂成>立. <玄 >太守<姚光>上言: 欲因其喪, 發兵擊之. 議者皆以爲可許. 尙書<陳忠>曰: '<宮>前桀 , <光>不能討, 死而擊之, 非義也. 宜遣吊問, 因責讓前罪, 赦不加誅, 取其後善.' <安帝>從之. 明年, <遂成>還<漢>生口." 案『海東古記』: "<高句麗><國祖王><高宮>以<後漢><津武{建武}> 二十九年, 癸巳{癸丑} 卽位, 時年七歲, 國母攝政. 至<孝桓帝><本初>元年丙戌, 遜位讓母弟<遂成>, 時, <宮>年一百歲, 在位九十四年, 則<建光>元年, 是<宮>在位第六十九年." 則『漢書』所記, 與『古記』抵 不相符合. 豈<漢書>所記誤耶?]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今西龍.『북한본』.李丙燾.
[북한본].
94년 가을 7월, 수성이 왜산 아래서 사냥하면서 좌우의 근신들에게 말했다.
"대왕이 늙었으나 죽지 않고, 나도 나이가 많으니 기다릴 수 없다.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계책을 꾸미기 바란다." 근신들이 모두 "삼가 명령에 따르겠다"라고 말하였다. 이 때 누군가가 혼자 나서서 "조금 전에 당신은 자신에게 결코 상서롭지 않은 말을 하였는데, 근신들이 올바른 말로 말리지 않고, 모두 삼가 명령에 따르겠다고 하였으니, 이는 간사하고 아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직언을 하려 하는데, 당신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였다. 수성이 "그대가 직언을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약이 될 터인데, 무엇을 의심하는가?"라고 대답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우리 대왕이 현명하여, 안팎으로 반역할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당신이 비록 국가에 공로가 있다고 하지만, 간사스럽고 아첨하는 아랫 사람들을 데리고, 현명한 임금을 폐위시키려고 하니, 이것이 한 오라기의 실로 1만 균의 물건을 매어놓고 거꾸로 끌어당겨 보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충효와 공손함으로 대왕을 섬기면, 대왕께서는 당신의 어진 마음을 깊이 헤아려, 반드시 당신에게 양위할 마음을 가질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화가 미칠 것이다." 수성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좌우의 근신들이 그의 정직함을 질투하여 수성에게 참소하였다. "대왕이 나이 많아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울까를 염려하여, 후일에 대한 계책을 도모하려는 것인데, 이 사람이 이와 같이 망녕된 말을 하니,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누설되어 후환을 초래할까 염려된다. 따라서 이 사람을 죽여 입을 닫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수성이 그 말을 따랐다.
가을 8월, 왕이 장수를 보내 한 나라 요동 서쪽 안평현을 습격하여 대방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 태수의 처자를 빼앗아 돌아왔다.
겨울 10월, 우보 고 복장이 왕에게 말하였다. "수성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니, 청컨대 먼저 그를 처형하소서." 왕이 말했다. "내가 이미 늙었고, 수성은 나라에 공이 있으니, 내가 그에게 왕위를 주려 한다. 그대는 염려하지 말라!" 복장이 말했다. "수성은 사람됨이 잔인하고 어질지 못합니다. 아마도 오늘 대왕의 왕위를 물려 받는다면, 내일은 대왕의 자손을 해칠 것입니다. 대왕은 다만 어질지 못한 아우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만 알고, 죄없는 자손들에게 후환이 미칠 것을 알지 못하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살피소서."
12월, 왕이 수성에게 말했다. "내가 이미 늙어서 모든 일이 힘들구나. 하늘의 운수가 너에게 있으며, 또한 네가 안으로는 국정에 참여하고 밖으로는 군사에 대한 일을 총괄하여, 오랫 동안 나라에 공로를 쌓아 신하와 백성들의 기대에 부응하였으니, 내가 의지하고 일을 맡길 적임자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왕위에 올라 길이 경사를 누릴지어다!" 왕은 곧 왕위를 내어주고 별궁으로 물러났다. 이를 태조대왕이라 하였다.[[후한서]에는 "안제 건광 원년에 고구려왕 궁이 죽고 아들 수성이 왕위에 올랐다. 이 때 현토 태수 요광이 왕이 죽은 것을 기회로 삼아 군사를 출동하여 치고 싶다고 안제에게 말하니 모두가 찬성하였다. 상서 진충이 말하기를 '전에는 궁이 훌륭하고 영명하여 요광이 칠 수 없었는데, 그가 죽었다 하여 치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마땅히 사자를 보내 조문하고, 예전의 죄과를 묻되, 용서하여 죽이지 말고 두었다가, 후일을 도모함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니, 안제가 이 말대로 하였다. 이듬해에 수성이 한 나라 포로를 돌려 보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해동고기]에는 "고구려 국조왕 고궁은 후한 건무 29년 계사에 즉위하니, 이 때 나이가 7세였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섭정하였다. 효환제 본초 원년 병술에 이르러, 동복 아우 수성에게 왕위를 내어주니 이 때 궁의 나이가 1백세로서, 재위 94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건광 원년은 곧 궁의 재위 69년에 해당한다. [한서]의 기록과 고기의 기록이 서로 다르니, 혹시 [한서]의 기록이 틀린 것이 아닌가?]

   <次大王 차대왕>

○<次大王>, 諱<遂成>, <太祖大王>同母弟也. 勇壯有威嚴, 小仁慈. 受<大祖大王>推讓, 卽位, 時年七十六.

차대왕의 이름은 수성이며 대조왕의 동복 아우이다. 그는 용감하고 체격이 건장하여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한 마음은 적었다. 태조대왕이 물려 준 자리를 받아 즉위하엿다. 이 때 나이 76세였다.

○二年, 春二月, 拜貫那沛者<彌儒>爲左輔. 三月, 誅右輔<高福章>. <福章>臨死嘆曰: "痛哉, 寃乎! 我當時爲先朝近臣, 其可見賊亂之人, 默然不言哉? 恨先君不用吾言, 以至於此. 今君甫陟大位, 宜新政敎以示百姓, 而以不義殺一忠臣. 吾與其主{生} 於無道之時, 不如死之速也." 乃卽刑. 遠近聞之, 莫不憤惜. 秋七月, 左輔<穆度婁>稱疾退老, 以□那于台{桓那于台} < 支留{ 支留}> 爲左輔, 加爵爲大主簿. 冬十月, <沸流那><陽神>爲中畏大夫, 加爵爲于台, 皆王之故舊. 十一月, 地震.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2년 봄 2월, 관나 패자 미유를 좌보로 임명하였다.
3월, 우보 고 복장을 죽였다. 복장이 죽을 때 탄식하며 말했다. "슬프고 원통하다! 내가 전일에 선왕의 근신이었으니, 어찌 반역을 도모하는 자를 보고도 묵묵히 말을 하지 않으랴? 전 왕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 한스럽다. 이제 임금이 왕위에 올랐으니 마땅히 새로운 정치와 교화를 백성에게 보여야 할 것인데도, 정의에 어긋나게 한 사람의 충신을 죽이려 한다. 내가 이와 같은 무도한 시대에 사느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하고 복장은 곧 형을 받았다. 원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하고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가을 7월, 좌보 목도루가 병을 구실로 퇴직하자 환나부 우태 어지류를 좌보로 삼고, 작위를 올려 대주부라 하였다.겨울 10월, 비류나부 양신을 중외 대부로 삼고, 작위를 올려 우태라 하니, 그들은 모두 왕의 옛친구였다.11월, 지진이 있었다.

○三年, 夏四月, 王使人, 殺<太祖大王{太祖大王}> 元子<莫勤>, 其弟<莫德>恐禍連及, 自縊.
○論曰: 昔<宋><宣公>不立其子<與夷>, 而立其弟<繆公{穆公}> , 小不忍, 亂大謀, 以致累世之亂, 故『春秋』 '大居正'. 今<太祖王>不知義, 輕大位以授不仁之弟, 禍及一忠臣·二愛子, 可勝歎耶.
秋七月, 王田于<平儒原>, 白狐隨而鳴. 王射之不中. 問於師巫, 曰: "狐者, 妖獸非吉祥,  白其色, 尤可怪也. 然天不能諄諄其言, 故示以妖怪者, 欲令人君恐懼修省以自新也. 君若修德, 則可以轉禍爲福." 王曰: "凶則爲凶, 吉則爲吉, 爾旣以爲妖, 又以爲福, 何其誣耶?" 遂殺之.

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 [左傳].
3년 여름 4월, 왕이 사람을 시켜 태조대왕의 맏아들 막근을 죽이자, 그의 아우 막덕은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까 두려워 스스로 목매어 자결하였다.
저자의 견해 : 옛날 송 선공이 그의 아들 여이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아우 목공을 왕으로 세웠으니, 이는 작은 인정에 이끌려 국가의 대계를 어지럽힌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여러 세대에 걸친 환란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춘추에서는 "정도(正道)에 처하는 것을 가장 크게 여기라"라고 말하였다. 이제 태조왕이 정의를 알지 못하고, 중대한 왕위를 가볍게 여겨 어질지 못한 아우에게 넘김으로써, 화란이 한 명의 충신과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미치게 하였으니, 어찌 탄식을 금할 수 있으랴?
가을 7월, 왕이 평유원에서 사냥하는데, 흰 여우가 따라 오면서 울었다. 왕이 여우를 쏘았으나 맞추지 못하였다. 왕이 사무에게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여우는 원래 요사스럽고, 상서롭지 못한 짐승인데, 더구나 그 빛깔이 희니 더욱 괴이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간절한 뜻을 말로 전할 수 없으므로 요괴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니,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알게 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덕을 닦으면,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흉하면 흉하다 하고, 길하면 길하다 할 것이지, 이미 요사스러운 것이라고 말해놓고 다시 복이 된다고 하니, 이 무슨 거짓말인가?" 왕은 마침내 그를 죽였다.

○四年, 夏四月丁卯晦, 日有食之. 五月, 五星聚於東方. 日者畏王之怒, 誣告{王} 曰: "是君之德也, 國之福也." 王喜. 冬十二月, 無氷.

趙炳舜. 『三國史節要』.
4년 여름 4월 그믐 정묘일에 일식이 있었다.5월, 오성이 동방에 모였다. 천기를 맡은 관원이 왕이 노할까 두려워 하여 거짓으로 "이는 임금의 덕이며, 나라의 복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기뻐하였다.
겨울 12월, 얼음이 얼지 않았다.

○八年, 夏六月, 隕霜. 冬十二月, 雷, 地震. 晦, 客星犯月.

8년 여름 6월, 서리가 내렸다. 겨울 12월, 우뢰와 지진이 있었고, 그믐날 객성이 달을 범하였다.

○十三年, 春二月, 星 于北斗. 夏五月甲戌晦, 日有食之.

13년 봄 2월, 혜성이 북두에 나타났다. 여름 5월 그믐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二十年, 春正月晦, 日有食之. 三月, <太祖大王>薨於別宮, 年百十九歲. 冬十月, 椽那 衣<明臨夫>, 因民不忍, 弑王. 號爲<次大王>.

20년 봄 정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3월, 태조대왕이 별궁에서 별세하니, 나이 119세였다.
겨울 10월, 연나부 조의 명림답부가 백성들의 고통을 보다 못하여 왕을 죽였다. 호를 차대왕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 1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