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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삼국사기 백제 본기 (원문+한글) 권 제 24


三國史記卷第二十四.

삼국사기 권 제 24

百濟本紀第二.
<仇首王>·<沙伴王>·<古 王>·<責稽王>·<汾西王>·<比流王>·<契王>·<近肖古王>·<近仇首王>·<枕流王>.

백제본기 제 2
구수왕, 사반왕, 고이왕, 책계왕, 분서왕,
비류왕, 설왕, 근초고왕, 근구수왕, 침류왕.

○<仇首王>[或云<貴須>.], <肖古王>之長子, 身長七尺, 威儀秀異. <肖古>在位四十九年薨, 卽位.

구수왕[혹은 귀수라고도 한다.]은 초고왕의 맏아들이다. 그는 신장이 7척이고 풍채가 특이하였다. 초고왕이 재위 49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三年, 秋八月, <靺鞨>來圍<赤峴城>, 城主固拒, 賊退歸. 王帥勁騎八百, 追之, 戰<沙道城>下, 破之, 殺獲甚衆.

3년 가을 8월, 말갈이 적현성에 와서 포위했으나 성주가 굳게 수비하니 적이 퇴각하였다. 왕이 정예 기병 8백 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추격하여, 사도성 밖에서 격파하였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적병이 많았다.

○四年, 春二月, 設二柵於<沙道城>側, 東西相去十里, 分<赤峴城>卒, 戍之.

4년 봄 2월, 사도성 옆에 두 곳의 목책을 세웠다. 동서의 거리가 10리였다. 적현성의 군사를 나누어 이곳을 수비하게 하였다.

○五年, 王遣兵圍<新羅><獐山城>, <羅>王親帥兵, 擊之, 我軍敗績.

5년, 왕이 군사를 보내 신라의 장산성을 포위했다. 신라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七年, 冬十月, 王城西門火. <靺鞨>寇北邊, 遣兵拒之.

7년 겨울 10월, 왕성 서문에 화재가 났다.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략하므로 군사를 보내 방어하였다.

○八年, 夏五月, 國東大水, 山崩四十餘所. 六月戊辰晦, 日有食之. 秋八月, 大閱於<漢水>之西.

8년 여름 5월, 동쪽 지방에 홍수가 나서 40여 곳의 산이 무너졌다.
6월 그믐 무진일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8월, 한수 서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하였다.

○九年, 春二月, 命有司修 防. 三月, 下令勸農事. 夏六月, 王都雨魚. 冬十月, 遣兵入<新羅><牛頭鎭>, 抄掠民戶. <羅>將<忠萱>領兵五千, 逆戰於<熊谷>, 大敗, 單騎而遁. 十一月, 庚申晦, 日有食之.

9년 봄 2월, 관리에게 명령하여 제방을 수축하게 하였다.
3월, 명령을 내려 농사를 권장하였다.
여름 6월, 서울에 물고기가 비와 함께 떨어졌다.
겨울 10월, 신라의 우두진으로 군사를 보내 민가를 약탈하였다. 신라 장수 충훤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웅곡에서 우리 군사와 싸우다가 대패하고, 단신으로 도망하였다.
11월 그믐 경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十一年, 秋七月, <新羅>一吉 <連珍>來侵, 我軍逆戰於<烽山>下, 不克. 冬十月, 大白{太白} 晝見.

趙炳舜. 『三國史節要』.
11년 가을 7월, 신라의 일길찬 연진이 침입하였다. 우리 군사는 봉산 아래에서 그들과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겨울 10월,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十四年, 春三月, 雨雹. 夏四月, 大旱, 王祈<東明廟>, 乃雨.

14년 봄 3월, 우박이 내렸다.
여름 4월, 큰 가뭄이 들어 왕이 동명왕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곧 비가 내렸다.

○十六年, 冬十月, 王田於<寒泉>. 十一月, 大疫. <靺鞨>入<牛谷>界, 奪掠人物. 王遣精兵三百, 拒之. 賊伏兵夾擊, 我軍大敗.

16년 겨울 10월, 왕이 한천에서 사냥하였다.
11월,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말갈이 우곡에 들어와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왕은 정예군 3백 명을 보내 방어하게 하였다. 그러나 적의 복병이 양쪽에서 협공하여 우리 군사가 대패하였다.

○十八年, 夏四月, 雨雹, 大如栗, 鳥雀中者死.

18년 여름 4월, 밤알 크기의 우박이 내렸다. 이에 맞은 새들이 죽었다.

○二十一年, 王薨.

21년, 왕이 사망하였다.

○<古王>, <蓋婁王>之第二子也. <仇首王>在位二十一年薨, 長子<沙伴>嗣位, 而幼少不能爲政, <肖古王>母弟<古 >卽位.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사망하자, 그의 맏아들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잘 처리하지 못하였므로 초고왕의 동복 아우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三年, 冬十月, 王獵西海大島, 手射四十鹿.

3년 겨울 10월, 왕이 서해의 큰 섬에서 사냥하여 직접 40마리의 사슴을 쏘아 맞혔다.

○五年, 春正月, 祭天地, 用 {鼓} 吹. 二月, 田於<釜山>, 五旬乃返. 夏四月, 震王宮門柱, 黃龍自其門飛出.

趙炳舜. 『三國史節要』.
5년 봄 정월, 악기를 사용하여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2월, 왕이 부산에서 사냥하다가 50일 만에 돌아왔다.
여름 4월, 왕궁의 문기둥에 벼락이 치자 황룡이 그 문에서 날아갔다.

○六年, 春正月, 不雨, 至夏五月, 乃雨.

6년 봄 정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다가, 여름 5월이 되어서야 비가 내렸다.

○七年, 遣兵侵<新羅>. 夏四月, 拜<眞忠>爲左將, 委以內外兵馬事. 秋七月, 大閱於<石川>. 雙 起於川上, 王射之, 皆中.

7년, 군사를 보내서 신라를 공격하였다.
여름 4월, 진충을 좌장으로 임명하여 내외의 군사에 관한 직무를 맡겼다.
가을 7월, 석천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하였다. 이 때 냇가에서 오리 한 쌍이 날아 가는 것을 왕이 쏘아서 모두 적중시켰다.

○九年, 春二月, 命國人, 開稻田於南澤. 夏四月, 以叔父<質>爲右輔. <質>性忠毅, 謀事無失. 秋七月, 出西門觀射.

9년 봄 2월, 백성들로 하여금 남쪽 소택지에 논을 개간하도록 하였다.
여름 4월, 왕의 숙부인 질을 우보로 삼았다. 질은 성격이 충직하여 실수없이 일을 계획하였다.
가을 7월, 왕이 서문 밖에 나가서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十年, 春正月, 設大壇, 祀天地山川.

10년 봄 정월, 큰 제단을 설치하여 천지와 산천에 제사지냈다.

○十三年, 夏大旱, 無麥. 秋八月, <魏><幽州>刺史< 丘儉>, 與<樂浪>大守{太守} <劉茂>·<朔方{帶方}> 大守{太守} <王遵{弓遵}> , 伐<高句麗>, 王乘虛, 遣左將<眞忠>, 襲取<樂浪>邊民, <茂>聞之怒, 王恐見侵討, 還其民口.

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
13년 여름, 크게 가물어 보리가 죽었다.
가을 8월, 위 나라 유주 자사 관구 검이 낙랑 태수 유 무, 삭방 태수 왕 준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자, 왕은 그 틈을 이용하여 좌장 진충으로 하여금 낙랑의 변방 주민들을 습격하여 잡아오게 하였다. 유무가 이 말을 듣고 분개하였다. 왕이 침공을 받을까 걱정하여 잡아온 사람들을 돌려 보냈다.

○十四年, 春正月, 祭天地於南壇. 二月, 拜<眞忠>爲右輔, <眞勿>爲左將, 委以兵馬事.

14년 봄 정월, 남쪽 제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2월, 진충을 우보로 임명하였다. 진물을 좌장으로 임명하여,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다.

○十五年, 春, 夏旱. 冬, 民饑, 發倉賑恤, 又復一年租調.

15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겨울,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풀어 구제하고 또한 1년간의 조세를 면제하였다.

○十六年, 春正月甲午, 大白{太白} 襲月.

趙炳舜. 『三國史節要』.
16년 봄 정월 갑오, 태백성이 달을 덮었다.

○二十二年, 秋九月, 出師侵<新羅>, 與<羅>兵戰於<槐谷>西, 敗之, 殺其將<翊宗>. 冬十月, 遣兵攻<新羅><烽山城>, 不克.

22년 가을 9월,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군과 괴곡 서쪽에서 싸워 승리하였다. 신라 장수 익종을 죽였다.
겨울 10월, 군사를 보내 신라의 봉산성을 쳤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二十四年, 春正月, 大旱, 樹木皆枯.

24년 봄 정월, 크게 가물어 나무가 모두 말랐다.

○二十五年, 春, <靺鞨>長<羅渴>獻良馬十匹, 王優勞使者以還之.

25년 봄, 말갈의 추장 나갈이 좋은 말 열 필을 바쳤다. 왕이 그 사자를 우대하여 돌려보냈다.

○二十六年, 秋九月, 靑紫雲起宮東, 如樓閣.

26년 가을 9월, 푸르고 보랏빛 나는 구름이 마치 누각 모양으로 왕궁 동쪽 하늘에 떠올랐다.

○二十七年, 春正月, 置內臣佐平, 掌宣納事;  內頭佐平, 掌庫藏事;  內法佐平, 掌禮儀事;  衛士佐平, 掌宿衛兵事;  朝廷佐平, 掌刑獄事;  兵官佐平, 掌外兵馬事. 又置達率·恩率·德率· 率·奈率及將德·施德·固德·季德·對德·文督·武督·佐軍·振武·克虞. 六佐平 一品, 達率二品, 恩率三品, 德率四品,  率五品, 奈率六品, 將德七品, 施德八品, 固德九品, 季德十品, 對德十一品, 文督十二品, 武督十三品, 佐軍十四品, 振武十五品, 克虞十六品. 二月, 下令六品已上服紫, 以銀花飾冠, 十一品已上服緋, 十六品已上服靑. 三月, 以王弟<優壽>爲內臣佐平.

27년 봄 정월, 내신 좌평을 두어 왕명의 출납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내두 좌평을 두어 물자와 창고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내법 좌평을 두어 예법과 의식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위사 좌평을 두어 숙위 병사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조정 좌평을 두어 형벌과 송사에 대한 일을 맡게 하고, 병관 좌평을 두어 지방의 군사에 대한 일을 맡게 하였다. 또 달솔·은솔·덕솔·한솔·나솔· 장덕·시덕·고덕·계덕·대덕·문독·무독·좌군·진무·극우 등을 두었다. 6개 좌평은 모두 1품, 달솔은 2품, 은솔은 3품, 덕솔은 4품, 한솔은 5품, 나솔은 6품, 장덕은 7품, 시덕은 8품, 고덕은 9품, 계덕은 10품, 대덕은 11품, 문독은 12품, 무독은 13품, 좌군은 14품, 진무는 15품, 극우는 16품이었다.
2월, 6품 이상은 자주빛 옷을 입고 은꽃으로 관을 장식하고, 11품 이상은 붉은 옷을 입으며, 16품 이상은 푸른 옷을 입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3월, 왕의 아우 우수를 내신 좌평으로 삼았다.

○二十八年, 春正月初吉, 王服紫大袖袍·靑錦袴·金花飾烏羅冠·素皮帶·烏韋{革} 履, 坐南堂聽事. 二月, 拜<眞可>爲內頭佐平; <優豆>爲內法佐平; <高壽>爲衛士佐平; <昆奴>爲朝廷佐平; <惟巳{惟己}> 爲兵官佐平. 三月, 遣使<新羅>請和, 不從.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28년 봄 정월 초하룻날, 왕이 자주빛으로 된 큰 소매 달린 도포와 푸른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쓰고, 흰 가죽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 신을 신고, 남당에 앉아서 정사를 처리하였다.
2월, 진가를 내두 좌평, 우두를 내법 좌평, 고수를 위사 좌평, 곤노를 조정 좌평, 유기를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3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였다. 신라는 이를 거절하였다.

○二十九年, 春正月, 下令: 凡官人受財及盜者, 三倍徵贓, 禁錮終身.

29년 봄 정월, 관리로서 뇌물을 받거나 도적질한 자는 그 세 배를 배상하며, 종신 금고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二{三} 十三年, 秋八月, 遣兵, 攻<新羅><烽山城>. 城主<直宣>率壯士二百人, 出擊敗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33년 가을 8월, 군사를 보내 신라의 봉산성을 공격하였다. 성주 직선이 장사 2백 명을 거느리고 반격하여 우리 군사가 패배하였다.

○三十六年, 秋九月, 星 于紫宮.

36년 가을 9월, 혜성이 자미궁 성좌에 나타났다.

○三十九年, 冬十一月, 遣兵侵<新羅>.

39년 겨울 11월, 군사를 보내 신라를 침공하였다.

○四十五年, 冬十月, 出兵攻<新羅>, 圍<槐谷城>.

45년 겨울 10월,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를 공격하여 괴곡성을 포위했다.

○五十年, 秋九月, 遣兵侵<新羅>邊境.

50년 가을 9월, 군사를 보내 신라의 변경을 침공하였다.

○五十三年, 春正月, 遣使<新羅>請和. 冬十一月, 王薨.

53년 봄 정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였다.
겨울 11월, 왕이 사망하였다.

○<責稽王>[或云<靑稽>.], <古 王>子, 身長大, 志氣雄傑, <古 >薨, 卽位. 王徵發丁夫, 葺<慰禮城>. <高句麗>伐<帶方>, <帶方>請救於我. 先是, 王娶<帶方>王女<寶菓>, 爲夫人. 故曰: "<帶方>我舅甥之國, 不可不副其請." 遂出師救之, <高句麗>怨. 王慮其侵寇, 修<阿且城>·<蛇城>, 備之.

책계왕[혹은 청계라고도 한다.]은 고이왕의 아들이다. 체격이 장대하고 의지와 기품이 걸출하였다. 고이왕이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왕이 장정을 징발하여 위례성을 보수하였다.
고구려가 대방을 치자 대방은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대방왕의 딸 보과를 부인으로 맞이하였기 때문에 왕이 "대방은 우리와 장인과 사위 관계의 나라이니, 그들의 요청을 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마침내 군사를 출동시켜 구원하였다. 고구려에서 이를 원망하였다. 왕은 고구려의 침략을 염려하여 아차성과 사성을 수축하여 방비하게 하였다.

○二年, 春正月, 謁<東明>廟.

2년 봄 정월, 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하였다.

○十三年, 秋九月, <漢>與<貊>人來侵, 王出禦, 爲敵兵所害, 薨.

13년 가을 9월, 한 나라가 맥인들을 이끌고 와서 침략하였다. 왕이 직접 나가서 방어하다가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汾西王>, <責稽王>長子. 幼而聰惠, 儀表英挺, 王愛之, 不離左右, 及王薨, 繼而卽位. 冬十月, 大赦.

분서왕은 책계왕의 맏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풍채가 걸출하였으므로 왕이 그를 사랑하여 항상 옆에 두었다. 왕이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겨울 10월,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二年, 春正月, 謁<東明>廟.

2년 봄 정월, 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하였다.

○五年, 夏四月, 彗星晝見.

5년 여름 4월, 낮에 혜성이 나타났다.

○七年, 春二月, 潛師襲取<樂浪>西縣. 冬十月, 王爲<樂浪>大守{太守} 所遣刺客賊害, 薨.

趙炳舜. 『三國史節要』.
7년 봄 2월, 낙랑의 서현을 기습하여 빼앗았다.
겨울 10월, 왕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比流王>, <仇首王>第二子, 性寬慈愛人, 又强力善射. 久在民間, 令譽流聞. 及<汾西>之終, 雖有子, 皆幼不得立, 是以, 爲臣民推戴卽位.

비류왕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다. 성격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사람을 아끼며, 또한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평민으로 살면서 명성을 떨쳤다. 분서왕이 죽었을 때, 비록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으로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신하와 백성들의 추대에 의하여 그가 왕위에 올랐다.

○五年, 春正月丙子朔, 日有食之.

5년 봄 정월 초하루 병자일에 일식이 있었다.

○九年, 春二月, 發使巡問百姓疾苦, 其鰥寡孤獨不能自存者, 賜 人三石. 夏四月, 謁<東明>廟. 拜<解仇>爲兵官佐平.

9년 봄 2월, 사신을 파견하여 민간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늙은이들로서 자력으로 살 수 없는 자들에게 일인당 곡식 3석씩을 주었다.
여름 4월, 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하였다.
해구를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十年, 春正月, 祀天地於南郊. 王親割牲.

10년 봄 정월, 남쪽 교외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왕이 직접 제물에 쓰일 고기를 베었다.

○十三年, 春, 旱, 大星西流. 夏四月, 王都井水溢, 黑龍見其中.

13년 봄, 가뭄이 들었다. 큰 별이 서쪽으로 흘러갔다.
여름 4월, 서울에서 우물이 넘치고, 그 속에서 흑룡이 나타났다.

○十七年, 秋八月, 築射臺於宮西, 每以朔望習射.

17년 가을 8월, 대궐 서쪽에 활 쏘는 누대를 쌓아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활쏘기를 연습하였다.

○十八年, 春正月, 以王庶弟<優福>爲內臣佐平. 秋七月, 大白{太白} 晝見. 國南蝗害 .

趙炳舜. 『三國史節要』.
18년 봄 정월, 왕의 이복동생 우복을 내신 좌평으로 삼았다.
가을 7월,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남쪽 지방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

○二十二年, 冬十月, 天有聲, 如風浪相激. 十一月, 王獵於<狗原>北, 手射鹿.

22년 겨울 10월,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풍랑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11월, 왕이 구원 북쪽에서 사냥하여 직접 사슴을 쏘았다.

○二十四年, 秋七月, 有雲如赤烏夾日. 九月, 內臣佐平<優福>, 據<北漢城>叛, 王發兵討之.

24년 가을 7월, 적오와 같이 생긴 구름이 양쪽에서 해를 끼고 있었다.
9월, 내신 좌평 우복이 북한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토벌하였다.

○二十八年, 春夏大旱, 草木枯, 江水竭, 至秋七月, 乃雨. 年饑人相食.

28년,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풀과 나무와 강물이 말랐다. 가을 7월에 되어서야 비가 내렸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 먹었다.

○三十年, 夏五月, 星隕. 王宮火, 連燒民戶. 秋十{七} 月, 修宮室. 拜<眞義>爲內臣佐平. 冬十二月, 雷.

趙炳舜. 『三國史節要』.
30년 여름 5월, 별이 떨어졌다. 대궐에 화재가 났는데 연이어 민가도 불탔다.
가을 7월, 대궐을 수리하였다. 진의를 내신 좌평으로 삼았다.
겨울 12월, 우레가 쳤다.

○三十二年, 冬十月乙未朔, 日有食之.

32년 겨울 10월 초하루 을미일에 일식이 있었다.

○三十三年, 春正月辛巳, 彗星見于奎.

33년 봄 정월 신사에 혜성이 규성 성좌에 나타났다.

○三十四年, 春二月, <新羅>遣使來聘.

34년 봄 2월,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四十一年, 冬十月, 王薨.

41년 겨울 10월, 왕이 사망하였다.

○<契王>, <汾西王>之長子也. 天資剛勇, 善騎射. 初<汾西>之薨也, <契王>幼不得立, <比流王>在位四十一年薨, 卽位.

설왕은 분서왕의 맏아들이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고 용맹스러웠으며, 말달리고 활쏘기를 잘하였다. 이전에 분서왕이 죽었을 때는 설왕이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는데, 비류왕이 재위 41년에 사망하자 그가 즉위하였다.

○三年, 秋九月, 王薨.

3년 가을 9월, 왕이 사망하였다.

○<近肖古王>, <比流王>第二子也, 體貌奇偉, 有遠識, <契王>薨, 繼位.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설왕이 사망하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二年, 春正月, 祭天地神祇. 拜<眞淨>爲朝廷佐平. <淨>王后親戚, 性 戾不仁, 臨事苛細, 恃勢自用, 國人疾之.

2년 봄 정월,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다.
진정을 조정 좌평으로 삼았다. 정은 왕후의 친척으로서 성질이 흉악하고 어질지 못하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까다롭고 잔소리가 많았다. 그는 권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여,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였다.

○二十一年, 春三月, 遣使聘<新羅>.

21년 봄 3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二十三年, 春三月丁巳朔, 日有食之. 遣使<新羅>, 送良馬二匹.

23년 봄 3월 초하루 정사일에 일식이 있었다.
사신을 시켜 신라에 좋은 말 두 필을 보냈다.

○二十四年, 秋九月, <高句麗>王<斯由>帥步騎二萬, 來屯<雉壤>, 分兵侵奪民戶. 王遣太子, 以兵徑至<雉壤>, 急擊破之, 獲五千餘級, 其虜獲分賜將士. 冬十一月, 大閱於<漢水>南, 旗幟皆用黃.

24년 가을 9월, 고구려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주둔하며 군사를 시켜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에게 군사를 주어,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불시에 공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적병 5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노획한 물품은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겨울 11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하였다. 모두 황색의 깃발을 사용하였다.

○二十六年, <高句麗>擧兵來. 王聞之, 伏兵於<浿河>上, 俟其至, 急擊之, <高句麗>兵敗北. 冬, 王與太子帥精兵三萬, 侵<高句麗>, 攻<平壤城>. <麗>王<&斯由{釗}> , 力戰拒之, 中流矢死, 王引軍退. 移都<漢山>.

趙炳舜. 『三國史節要』.
26년,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공격해왔다. 왕이 이를 듣고 패하 강가에 복병을 배치하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였다.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군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고구려왕 사유가 필사적으로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하자,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

○二十七年, 春正月, 遣使入<晉>朝貢. 秋七月, 地震.

27년 봄 정월,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7월, 지진이 났다.

○二十八年, 春二月, 遣使入<晉>朝貢. 秋七月, 築城於<靑木嶺>. <禿山>城主率三百人, 奔<新羅>.

28년 봄 2월,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7월,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독산 성주가 주민 3백 명을 거느리고 신라로 도망갔다.

○三十年, 秋七月, <高句麗>來攻北鄙<水谷城>, 陷之. 王遣將拒之, 不克. 王又將大擧兵報之, 以年荒不果. 冬十一月, 王薨. 『古記』云: "<百濟>開國已來, 未有以文字記事. 至是, 得博士<高興>, 始有『書記』." 然<高興>未嘗顯於他書, 不知其何許人也.

30년 가을 7월, 고구려가 북쪽 변방의 수곡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왕이 장수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왕이 다시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보복하려 했으나,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
겨울 11월, 왕이 사망하였다.
고기에는 "백제는 개국 이래 문자로 사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가, 이 때에 와서 박사 고 흥이 처음으로 [서기]를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 흥이라는 이름이 다른 서적에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近仇首王>[一云<諱須>.], <近肖古王>之子. 先是, <高句麗><國岡王><斯由>親來侵, <近肖古王>遣太子拒之. 至<半乞壤>, 將戰. <高句麗>人<斯紀>, 本<百濟>人, 誤傷國馬蹄, 懼罪奔於彼. 至是, 還來, 告太子曰: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已. 其驍勇, 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太子從之, 進擊大敗之, 追奔逐北, 至於<水谷城>之西北. 將軍<莫古解>諫曰: "嘗聞道家之言: '知足不辱, 知止不殆.' 今所得多矣, 何必 {求} 多." 太子善之, 止焉. 乃積石爲表, 登其上, 顧左右曰: "今日之後, 疇克再至於此手{乎} ." 其地有巖石,  若馬蹄者, 他人至今, 呼爲<太子馬迹>. <近肖古>在位三十年薨, 卽位.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근구수왕[휘수라고도 한다.]은 근초고왕의 아들이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 국강왕 사유가 직접 와서 침범하였다. 근초고왕은 태자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다. 그는 반걸양에 이르러 전투를 시작하려 하였다. 고구려인 사기는 원래 백제인이었는데, 실수로 왕이 타는 말의 발굽을 상처나게 하였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고구려로 도망갔었다. 그가 이 때 돌아와서 태자에게 말했다.
"고구려 군사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가짜 군사로서 수를 채운 것에 불과합니다. 그 중 제일 강한 부대는 붉은 깃발을 든 부대입니다. 만일 그 부대를 먼저 공략하면,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허물어질 것입니다."
태자가 이 말에 따라 진격하여 크게 이기고, 달아나는 군사를 계속 추격하여 수곡성 서북에 도착하였다. 이 때 장수 막고해가 간하였다.
"일찌기 도가의 말에 '만족할 줄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읍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더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태자가 이 말을 옳게 여겨 추격을 중단하였다. 그는 즉시 그곳에 돌을 쌓아 표적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늘 이후로 누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가?"
그곳에는 말발굽 같이 생긴 바윗돌 틈이 있는데,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태자의 말굽 자국이라고 부른다.
근초고왕이 재위 30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二年, 以王舅<眞高道>爲內臣佐平, 委以政事. 冬十一月, <高句麗>來侵北鄙.

2년, 왕의 외삼촌 진고도를 내신 좌평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겨울 11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三年, 冬十月, 王將兵三萬, 侵<高句麗><平壤城>. 十一月, <高句麗>來侵.

3년 겨울 10월, 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침공하였다.
11월, 고구려가 침입하였다.

○五年, 春三月, 遣使朝<晉>, 其使海上遇惡風, 不達而還. 夏四月, 雨土竟日.

5년 봄 3월,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으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진 나라에 도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름 4월, 흙비가 종일 내렸다.

○六年, 大疫. 夏五月, 地裂, 深五丈, 橫廣三丈, 三日乃合.

6년,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여름 5월, 땅바닥이 깊이가 다섯 길, 넓이가 세 길이나 되게 갈라졌다가 3일만에 다시 붙었다.

○八年, 春不雨, 至六月, 民饑, 至有 子者, 王出官 , 贖之.

8년, 봄부터 6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백성들이 굶주려 자식을 파는 자가 나타나자, 왕이 나라의 곡식을 내어 대신 값을 물어 주었다.

○十年, 春二月, 日有暈三重. 宮中大樹自拔. 夏四月, 王薨.

10년 봄 2월, 햇무리가 세 겹으로 둘러졌다. 대궐 뜰에 있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다.
여름 4월, 왕이 사망하였다.

○<枕流王>, <近仇首王>之元子, 母曰<阿 >夫人, 繼父卽位. 秋七月, 遣使入<晉>朝貢. 九月, <胡>僧<摩羅難 >自<晉>至, 王迎之, 致宮內, 禮敬焉. 佛法始於此.

침류왕은 근구수왕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아이부인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가을 7월,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9월,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진 나라에서 오자, 왕이 궁중으로 맞아들여 우대하고 공경하였다. 불교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二年, 春二月, 創佛寺於<漢山>, 度僧十人. 冬十一月, 王薨.
三國史記卷第二十四.

2년 봄 2월, 한산에 절을 창건하고, 중 1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겨울 11월, 왕이 사망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 2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