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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삼국사기 백제 본기 (원문+한글) 권 제 27


三國史記卷第二十七.

삼국사기 권 제 27

百濟本紀第五.
<威德王>·<惠王>·<法王>·<武王>.

백제본기 제 5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威德王>, 諱<昌>, <聖王>之元子也. <聖王>在位三十二年薨, 繼位.

위덕왕은 이름이 창이니 성왕의 맏아들이다. 성왕이 재위 32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元年, 冬十月, <高句麗>大擧兵來攻<熊川城>, 敗 而歸.

원년,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대대적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웅천성을 침공하였다가 패하고 돌아갔다.

(자료를 공유합시다. - 진갑곤 -)
○六年, 夏五月丙辰朔, 日有食之.

6년, 여름 5월 초하루 병진일에 일식이 있었다.

○八年, 秋七月, 遣兵侵掠<新羅>邊境, <羅>兵出擊敗之, 死者一千餘人.

8년, 가을 7월에 왕이 군사를 보내 신라의 변경을 침공하였다가 신라군의 반격으로 패하였다. 사망자가 1천여 명이었다.

○十四年, 秋九月, 遣使入<陳>朝貢.

14년, 가을 9월에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十七年, <高齊>後主拜王爲使持節侍中車騎大將軍<帶方郡>公<百濟>王.

17년, 고제의 후주가 왕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을 배수하였다.

○十八年, <高齊>後主, 又以王爲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18년, 고제의 후주가 또 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十九年, 遣使入<齊>朝貢. 秋九月庚子朔, 日有食之.

19년, 제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일에 일식이 있었다.

○二十四年, 秋七月, 遣使入<陳>朝貢. 冬十月, 侵<新羅>西邊州郡, <新羅>伊 <世宗>帥兵, 擊破之. 十一月, 遣使入<宇文周>朝貢.

24년, 가을 7월에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0월, 신라 서부 변경의 주, 군을 공격하였는데, 신라의 이찬 세종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격파시켰다.
11월, 우문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二十五年, 遣使入<宇文周>朝貢.

25년, 우문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二十六年, 冬十月, 長星竟天, 二十日而滅. 地震.

26년, 겨울 10월, 혜성이 하늘에 뻗었다가 20일만에 사라졌다. 지진이 발생하였다.

○二十八年, 王遣使入<隋>朝貢, <隋><高祖>詔拜王爲上開府儀同三司<帶方>郡公.

28년, 왕이 수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더니 수 나라 고조가 왕을 상개부의동삼사대방군공으로 삼았다.

○二十九年, 春正月, 遣使入<隋>朝貢.

29년, 봄 정월, 수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三十一年, 冬十一月, 遣使入<陳>朝貢.

31년, 겨울 11월,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三十三年, 遣使入<陳>朝貢.

33년, 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三十六年, <隋>平<陳>. 有一戰船, 漂至<耽牟羅>國, 其船得還, 經于國界, 王資送之甚厚, 幷遣使奉表, 賀平<陳>. <高祖>善之, 下詔曰: "<百濟>王旣聞平<陳>, 遠令奉表. 往復至難, 若逢風浪, 便致傷損. <百濟>王心迹淳至, 朕已委知. 相去雖遠, 事同言面, 何必數遣使, 來相體悉. 自今已後, 不須年別入貢, 朕亦不遣使往, 王宜知之."

36년, 수 나라가 진 나라를 평정하였다. 전함 한 척이 탐모라국으로 표류하여 왔다. 그 배가 돌아가게 되어 국경을 통과할 때, 왕이 물자를 풍성하게 주어 귀국케 하고, 사신을 보내 진 나라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는 표문을 올렸다. 수 나라 고조가 이를 훌륭히 여겨 조서를 내려 말했다.
"백제왕이 진 나라를 평정하였다는 말을 듣자 멀리서 사신을 보내 표문을 바쳤다. 왕래가 지극히 어려운 지역이니, 만약 풍랑이라도 만나면 사람이 상하고 재물을 잃게 될 것이다. 백제왕의 마음이 순박하고 지극한 것은 내가 이미 깊이 알고 있다. 거리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얼굴을 대하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하필 자주 사신을 보내어 서로 대면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후로는 해마다 조공하지 말 것이며 나도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니 왕은 그리 알 것이다."

○三十九年, 秋七月壬申晦, 日有食之.

39년, 가을 7월 그믐 임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四十一年, 冬十一月癸未, 星 于角·亢.

41년, 겨울 11월 계미에 혜성이 각성과 항성 성좌에 나타났다.

○四十五年, 秋九月, 王使長史<王辯那>, 入<隋>朝獻. 王聞<隋>興<遼東>之役, 遣使奉表, 請爲軍{鄕} 道. 帝下詔曰: "往歲, <高句麗>不供職貢, 無人臣禮, 故命將討之. <高元> 君臣, 恐懼畏服, 歸罪, 朕已赦之, 不可致伐." 厚我使者而還之. <高句麗>頗知其事, 以兵侵掠國境. 冬十二月, 王薨. 群臣議諡曰<威德>.

趙炳舜. 『三國史節要』.고구려 영양왕을 말함.
45년, 가을 9월, 왕이 장사 왕변나를 시켜 수 나라에 가서 조공하게 하였다. 왕은 수 나라가 요동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바치고, 군사의 향도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년에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기에 장군들로 하여금 그들을 토벌케 하였는데, 고원의 신하들이 겁을 내며 잘못을 시인하기에 내가 이미 용서하였으니 그들을 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그 일을 모두 알고 군사를 보내 우리 국경을 침략하였다.
겨울 12월, 왕이 사망하였다. 군신들이 의논하여 시호를 위덕이라 하였다.

○<惠王>, 諱<季>, <明王>第二子. <昌王>薨, 卽位.

혜왕의 이름은 계이니 명왕의 둘째 아들이다. 창왕이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二年, 王薨. 諡曰<惠>.

2년, 왕이 사망하였다. 시호를 혜라고 하였다.

○<法王>, 諱<宣>[或云<孝順>.], <惠王>之長子. <惠王>薨, 子<宣>, 繼位.[『隋書』以<宣>爲<昌王>之子.]
冬十二月, 下令: 禁殺生, 收民家所養鷹 , 放之, 漁獵之具焚之.

법왕의 이름은 선[혹은 효순이라고도 한다.]이니 혜왕의 맏아들이다. 혜왕이 사망하자 아들 선이 왕위를 이었다.[[수서]에는 선을 창왕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겨울 12월,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놓아 주고,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들을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二年, 春正月, 創<王興寺>, 度僧三十人. 大旱, 王幸<漆岳寺>, 析雨{祈雨} . 夏五月, 薨. 上諡曰<法>.

趙炳舜. 『三國史節要』.
2년, 봄 정월에 왕흥사를 창립하고 중 3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큰 가뭄이 들어 왕이 칠악사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다.
여름 5월, 왕이 사망하였다. 시호를 법이라 하였다.

○<武王>, 諱<璋>, <法王>之子. 風儀英偉, 志氣豪傑. <法王>卽位, 翌年薨, 子嗣位.

무왕의 이름은 장이니 법왕의 아들이다.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고 기상이 걸출하였다. 법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三年, 秋八月, 王出兵, 圍<新羅><阿莫山城>[一名<母山城>]. <羅>王<眞平>遣精騎數千, 拒戰之, 我兵失利而還. <新羅>築<小 >·<畏石>·<泉山>·<甕岑>四城, 侵逼我疆境. 王怒, 令佐平<解 >, 帥步騎四萬, 進攻其四城. <新羅>將軍<乾品>·<武殷>, 帥衆拒戰. <解 >不利, 引軍退於<泉山>西大澤中, 伏兵以待之. <武殷>乘勝, 領甲卒一千, 追至大澤, 伏兵發急擊之. <武殷>墜馬, 士卒驚駭, 不知所爲. <武殷>子<貴山>大言曰: "吾嘗受敎於師, 曰: '士當軍, 無退.' 豈敢奔退, 以墜師敎乎?" 以馬授父, 卽與小將< 項>, 揮戈力鬪以死. 餘兵見此益奮, 我軍敗績, <解 >僅免, 單馬以歸.

3년 가을 8월,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의 아모산성[모산성이라고도 한다.]을 포위하였다. 신라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 명을 보내 항전하자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돌아왔다. 신라가 소타, 외석, 천산, 옹잠 등 네 성을 쌓고, 우리 변경에 침범하였다. 왕이 노하여 좌평 해수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거느리고, 그 네 성을 공격케 하였다. 신라 장군 건품, 무은이 군사를 거느리고 마주 싸웠다. 해수가 불리해지자 군사를 이끌고 천산 서쪽의 소택지로 퇴각하여 복병을 숨겨 놓고 기다렸다. 무은이 승세를 타고 갑병 1천 명을 거느리고 소택지까지 추격하여 왔을 때, 복병이 달려들어 갑자기 공격하였다. 무은은 말에서 떨어지고 군사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무은의 아들 귀산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일찌기 스승에게 들으니 '군사는 적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찌 감히 도망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겠느냐!"
그는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즉시 소장 추항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우다가 사망하였다. 나머지 군사들이 이를 보고 더욱 분발하여 우리 군사가 패배하고, 해수는 겨우 위기를 모면하여 단신으로 돌아왔다.

○六年, 春二月, 築<角山城>. 秋八月, <新羅>侵東鄙.

6년 봄 2월, 각산성을 쌓았다.
가을 8월, 신라가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七年, 春三月, 王都雨土, 晝暗. 夏四月, 大旱, 年饑.

7년 봄 3월, 서울에 흙비가 내리고 낮에 어두웠다.
여름 4월, 크게 가물어 기근이 들었다.

○八年, 春三月, 遣杵率{ 率} <燕文進>, 入<隋>朝貢. 又遣佐平<王孝隣>入貢, 兼請討<高句麗>. <煬帝>許之, 令 <高句麗>動靜. 夏五月, <高句麗>來攻<松山城>, 不下, 移襲<石頭城>, 虜男女三千而歸.

趙炳舜. 『三國史記』 職官.
8년 봄 3월, 한솔 연문진을 수 나라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 또한 좌평 왕 효린을 보내 공물을 바치면서 고구려를 치자고 요청하였다. 양제가 이를 허락하고 고구려의 동정을 살피라고 하였다.
여름 5월, 고구려가 송산성을 공격하다가 함락시키지 못하고 다시 석두성을 습격하여 남녀 3천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九年, 春三月, 遣使入<隋>朝貢. <隋>文林郞<裴淸>奉使<倭>國, 經我國南路.

9년 봄 3월, 수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수 나라 문림랑 배 청이 왜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우리 나라 남쪽 길을 통과하였다.

○十二年, 春二月, 遣使入<隋>朝貢. <隋><煬帝>將征<高句麗>, 王使<國智牟>入請軍期. 帝悅, 厚加賞錫, 遣尙書起部郞<席律>來, 與王相謀. 秋八月, 築<赤 城>. 冬十月, 圍<新羅>< 岑城>, 殺城主<讚德>, 滅其城.

12년 봄 2월, 수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수 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치려 하므로 왕이 국지모를 수 나라에 보내 행군 일정을 물으니 양제가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내리고 상서 기부랑 석률을 보내 왕과 상의하게 하였다.
가을 8월, 적암성을 쌓았다.
겨울 10월, 신라의 가잠성을 포위하여 성주 찬덕을 죽이고 그 성을 함락시켰다.

○十三年, <隋>六軍度<遼>, 王嚴兵於境, 聲言助<隋>, 實持兩端. 夏四月, 震宮南門. 五月, 大水, 漂沒人家.

13년, 수 나라 6군이 요수를 건너자, 왕이 국경에서 군비를 엄하게 하여 수 나라에 협조한다고 성명하였으나 실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여름 4월, 대궐 남문에 벼락이 쳤다.
5월, 홍수가 나서 인가가 유실되었다.

○十七年, 冬十月, 命達率< 奇{芍奇}> 領兵八千, 攻<新羅><母山城>. 十一月, 王都地震.

趙炳舜. 『三國史節要』.
17년 겨울 10월, 달솔 백기에게 명령하여 군사 8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모산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11월, 서울에 지진이 났다.

○十九年, <新羅>將軍<邊品>等, 來攻< 岑城>, 復之, <奚論>戰死.

19년, 신라의 장군 변품 등이 와서 가잠성을 공격하여 성을 회복하였는데, 해론이 여기에서 전사하였다.

○二十二年, 冬十月, 遣使入<唐>, 獻果下馬.

22년 겨울 10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과하마를 바쳤다.

○二十四年, 秋, 遣兵侵<新羅><勒弩縣>.

24년 가을, 군사를 보내 신라의 늑노현을 침공하였다.

○二十五年, 春正月, 遣大臣入<唐>朝貢. <高祖>嘉其誠款, 遣使就冊爲<帶方郡>王{公} <百濟>王. 秋七月, 遣使入<唐>朝貢. 冬十月, 攻<新羅><速含>·<櫻岑>·< 岑>·<烽岑>·<旗懸>·<冗柵>等六城, 取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25년 봄 정월, 당 나라에 대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고조가 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사신을 보내 왕을 대방군공백제왕으로 책봉하였다.
가을 7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0월, 신라의 속함, 앵잠, 기잠, 봉잠, 기현, 용책 등 6개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二十六年, 冬十一月, 遣使入<唐>朝貢.

26년 겨울 11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二十七年, 遣使入<唐>, 獻明光鎧, 因訟<高句麗>梗道路, 不許來朝上國. <高祖>遣散騎常侍<朱子奢>來, 詔諭我及<高句麗>, 平其怨. 秋八月, 遣兵, 攻<新羅><王在城{主在城}> , 執城主<東所>, 殺之. 冬十二月, 遣使入<唐>朝貢.

李丙燾. [羅紀].
27년,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라는 갑옷을 바치면서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고 상국을 입조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호소하였다. 고조는 산기상시주자사에게 조서를 우리와 고구려에 보내 서로의 원한을 잊으라고 달랬다.
가을 8월, 군사를 보내 신라의 왕재성을 공격하여 성주 동소를 죽였다.
겨울 12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二十八年, 秋七月, 王命將軍<沙乞>, 拔<新羅>西鄙二城, 虜男女三百餘口. 王欲復<新羅>侵奪地分, 大擧兵, 出屯於<熊津>. <羅>王<眞平>聞之, 遣使告急於<唐>. 王聞之, 乃止. 秋八月, 遣王姪<福信>, 入<唐>朝貢, <太宗>謂與<新羅>世 , 數相侵伐, 賜王璽書曰: "王世爲君長, 撫有東蕃, 海隅遐曠, 風濤艱阻, 忠款之至, 職貢相尋, 尙想嘉猷, 甚以欣慰. 朕祗承寵命, 君臨區宇, 思弘正道, 愛育黎元, 舟車所通, 風雨所及, 期之遂性, 咸使乂安. <新羅>王<金眞平>, 朕之蕃臣, 王之 國, 每聞遣師, 征討不息. 阻兵安忍, 殊乖所望. 朕已對王姪<福信>及<高句麗><新羅>使人, 具 通和, 咸許輯睦. 王必須忘彼前怨, 識朕本懷, 共篤 情, 卽停兵革." 王因遣使, 奉表陳謝. 雖外稱順命, 內實相仇如故.

28년 가을 7월, 왕이 장군 사걸에게 명하여 신라 서부 변경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남녀 3백여 명을 사로잡았다. 왕이 신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기 위하여 군사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웅진에 주둔하였다. 신라왕 진평이 이를 듣고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위급한 사태를 말하였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중지하였다.
가을 8월, 왕이 조카 복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태종이 백제와 신라가 대대로 원수를 맺어 서로 자주 침공한다고 하면서 왕에게 조서를 보내 말했다.
"왕은 대대로 군주가 되어 동쪽 변방을 진무하고 있다. 먼 바다 한 끝에서 바람과 파도가 험한 것을 무릅쓰고 충성이 지극하여 조공이 계속되니, 왕의 아름다운 생각을 높이 평가하며 매우 기쁘게 여긴다. 내가 삼가 영광스러운 대명을 이어받아 천하를 통치하게 되었으니, 정도를 넓히고 백성들을 아껴 양육하며,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과 바람과 비가 미치는 곳마다 모두 천성에 따르며 모두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신라왕 김 진평은 나의 번신이요, 왕의 이웃이지만 매번 군사를 보내 토벌하는 것이 그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군대의 힘을 믿고 잔인한 행위를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나의 기대에 매우 어긋난다. 내가 이미 왕의 조카 복신과 고구려, 신라 사신들에게 서로 화친하도록 타이르고 모두 화목하게 지내게 하였다. 왕은 반드시 전날의 원한을 잊고 나의 본뜻을 헤아려서 모두 이웃의 정을 두터이 하여 즉시 전쟁을 중지하라."
왕이 곧 사신을 보내 표문을 바쳐 사죄하였다. 비록 겉으로는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이전처럼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二十九年, 春二月, 遣兵攻<新羅>< 峰城{ 岑城}> , 不克而還.

李丙燾. [羅紀].
趙炳舜. [三國史節要].
29년 봄 2월, 군사를 보내 신라의 가잠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三十年, 秋九月, 遣使入<唐>朝貢.

30년 가을 9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三十一年, 春二月, 重修<泗 >之宮. 王幸<熊津城>. 夏旱, 停<泗 >之役. 秋七月, 王至自<熊津>.

31년 봄 2월, 사비의 궁전을 중수하였다. 왕이 웅진성으로 갔다.
여름에 가뭄이 들어 사비의 궁전을 중수하는 일을 중지하였다.
가을 7월, 왕이 웅진에서 돌아왔다.

○三十二年, 秋九月, 遣使入<唐>朝貢.

32년 가을 9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三十三年, 春正月, 封元子<義慈>爲太子. 二月, 改築<馬川城>. 秋七月, 發兵伐<新羅>, 不利. 王田于<生草>之原. 冬十二月, 遣使入<唐>朝貢.

33년 봄 정월, 맏아들 의자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2월, 마천성을 고쳐 쌓았다.
가을 7월, 군사를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불리하였다.
왕이 생초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겨울 12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三十四年, 秋八月, 遣將攻<新羅><西谷城>, 十三日拔之.

34년 가을 8월, 장수를 보내 신라의 서곡성을 공격하여 13일 만에 함락시켰다.

○三十五年, 春二月, <王興寺>成. 其寺臨水, 彩飾壯麗. 王每乘舟, 入寺行香. 三月, 穿池於宮南, 引水二十餘里, 四岸植以楊柳, 水中築島嶼, 擬<方丈仙山>.

35년 봄 2월, 왕흥사가 준공되었다. 그 절은 강가에 있었으며 채색장식이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왕이 매번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가서 향을 피웠다.
3월, 대궐 남쪽에 못을 파서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 들이고, 사면 언덕에 버들을 심고 물 가운데 방장선산을 흉내낸 섬을 쌓았다.

○三十七年, 春二月, 遣使入<唐>朝貢. 三月, 王率左右臣寮, 遊燕於<泗 河>北浦. 兩岸奇巖怪石錯立, 間以奇花異草, 如 圖. 王飮酒極歡, 鼓琴自歌, 從者屢舞. 時人謂其地爲<大王浦>. 夏五月, 王命將軍<于召>, 帥甲士五百, 往襲<新羅><獨山城>. <于召>至<玉門谷>, 日暮, 解鞍休士. <新羅>將軍<閼川>將兵, 掩至 擊之. <于召>登大石上, 彎弓拒戰, 矢盡, 爲所擒. 六月, 旱. 秋八月, 燕群臣於<望海樓>.

37년 봄 2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3월, 왕이 측근 신하들을 데리고 사비하 북쪽 포구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포구의 양쪽 언덕에 기암괴석이 서있고, 그 사이에 진기한 화초가 있어 마치 그림 같았다. 왕이 술을 마시고 몹시 즐거워 하여, 거문고를 켜면서 노래를 부르자 수행한 자들도 여러번 춤을 추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곳을 대왕포라고 불렀다.
여름 5월, 왕이 장군 우소에게 명령하여 갑병 5백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독산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우소가 옥문곡에 이르렀을 때 해가 저물기 시작하였다. 그는 안장을 풀고 군사를 쉬게 하였다. 그 때 신라 장군 알천이 군사를 거느리고 몰래 기습하여 왔다. 우소가 큰 돌 위에 올라서서 활을 쏘면서 대항하여 싸우다가 화살이 모두 떨어지자 그들에게 사로잡혔다.
6월, 가뭄이 들었다.
가을 8월, 왕이 망해루에서 군신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三十八年, 春二月, 王都地震. 三月, 又震. 冬十二月, 遣使入<唐>, 獻鐵甲雕斧. <太宗>優勞之, 賜錦 {袍} 幷彩帛三千段.

趙炳舜. 『三國史節要』.
38년 봄 2월, 서울에서 지진이 났다.
3월, 다시 지진이 났다.
겨울 12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철갑옷과 조각한 도끼를 바치니, 태종이 사신을 우대하여 위로하고 비단 도포와 채색 비단 3천 단을 보냈다.

○三十九年, 春三月, 王與嬪御泛舟大池.

39년 봄 3월, 왕이 궁녀들을 데리고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

○四十年, 冬十月, 又遣使於<唐>, 獻金甲雕斧.

40년 겨울 10월, 다시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철갑옷과 조각한 도끼를 바쳤다.

○四十一年, 春正月, 星 于西北. 二月, 遣子弟於<唐>, 請入<國學>.

41년 봄 정월, 혜성이 서북쪽에 나타났다.
2월, 자제들을 당 나라에 보내 국학에 입학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四十二年, 春三月, 王薨. 諡曰<武>. 使者入<唐>, 素服奉表曰: "君外臣<扶餘璋>卒." 帝擧哀<玄武門>, 詔曰: "懷遠之道, 莫先於寵命, 飾終之義, 無隔於遐方. 故柱國<帶方郡>王{公} <百濟>王<扶餘璋>, 棧山 {航} 海, 遠 正朔, 獻琛奉牘, 克固始終, 奄致薨殞, 追深 悼. 宜加常數, 式表哀榮, 贈光祿大夫." 賻賜甚厚.
三國史記卷第二十七.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42년 봄 3월, 왕이 사망하였다. 시호를 무라고 하였다. 사신이 당 나라에 가서 소복을 입고 표문을 바쳐 "임금의 번신 부여 장이 죽었습니다"라고 알렸다. 황제는 현무문에서 추도 의식을 거행하고 조서를 보내 이르기를 "먼 나라를 사랑하는 방도는 총명(寵命) 보다 나은 것이 없고, 죽은 자를 표창하는 의리는 먼 곳이라하여 막혀 있는 것이 아니다. 고(故) 주국대방군왕백제왕부여장은 산을 넘고 바다 건너 멀리까지 와서 정삭을 받고, 공물을 바치고 표문을 올리기를 한결같이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였으니 그를 깊이 추도한다. 마땅히 상례 이상으로 영전을 표하여 광록대부로 추증하노라"라 하고, 부의를 매우 후하게 보냈다.
삼국사기 권 제 2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