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라사

삼국사기 신라 본기 (원문+한글) 권 제 9


三國史記卷第九.

삼국사기 권 제 9

新羅本紀第九.
<孝成王>·<景德王>·<惠恭王>·<宣德王>.

신라본기 제 9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 선덕왕.

○<孝成王>立. 諱<承慶>, <聖德王>第二子, 母<炤德王后>. 大赦. 三月, 改司正丞及左右議方府丞,  爲佐. 以伊 <貞宗>爲上大等; 阿 <義忠>爲中侍. 夏五月, 地震. 秋九月, 流星入大微. 冬十月, 入<唐>沙 <抱質>廻. 十二月, 遣使入<唐>獻方物.

효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경이며,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소덕왕후이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3월, 사정부의 승과 좌우 의방부의 승을 모두 좌로 고쳤다. 이찬 정종을 상대등, 아찬 의충을 중시에 임명하였다.
여름 5월, 지진이 있었다.
가을 9월, 유성이 태미 성좌에 들어 갔다.
겨울 10월, 당 나라에 갔던 사찬 포질이 돌아왔다.
12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二年, 春二月, <唐><玄宗>聞<聖德王>薨, 悼惜久之, 遣左贊善大夫<邢璹>, 以鴻 少卿, 往吊祭, 贈太子太保, 且冊嗣王爲開府儀同三司<新羅>王. <璹>將發, 帝製詩序, 太子已下百寮, 咸賦詩以送. 帝謂<璹>曰: "<新羅>號爲君子之國, 頗知書記, 有類<中國>. 以卿惇儒, 故持節往, 宜演經義, 使知大國儒敎之盛." 又以國人善碁, 詔率府兵曹 軍<楊季膺>爲副, 國高奕皆出其下. 於是, 王厚贈<璹>等金寶藥物. <唐>遣使, 詔冊王妃<朴>氏. 三月, 遣<金元玄>入<唐>賀正. 夏四月, <唐>使臣<邢璹>, 以<老子>『道德經』等文書, 獻于王. 白虹貫日, <所夫里郡>河水變血.

2년 봄 2월, 당 현종은 성덕왕이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슬퍼하다가, 좌찬선 대부 형도를 홍려소경의 자격으로 파견하여 조문케하고, 태자태보의 관작을 추증하였으며, 또한 새 왕을 '개부의동삼사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형도가 당 나라를 출발하려 할 때, 황제가 시의 서문을 짓고, 태자 이하 백관들이 모두 시를 지어 보냈다. 황제가 형도에게 말하기를 "신라는 '군자의 나라'라고 불리우나니 책과 글에 조예가 사당히 깊어서 우리 중국과 비슷하다. 그대는 돈유한 선비이므로 나의 신임표를 가지고 가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경서의 뜻을 강의하여, 대국에 유교가 성한 것을 알게 하라"고 하였다. 황제는 또한 우리 백성들이 바둑을 잘 둔다고 하여, 솔부병조참군 양계응에게 조칙을 내려 부관으로 동행케 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바둑 고수들이 모두 그를 따를 수 없었다. 이 때 왕이 형도 등에게 금·보물·약물 등을 후하게 주었다. 당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서를 내려 박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3월, 김 원현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여름 4월, 당 나라 사신 형도가 노자 [도덕경] 등의 책을 왕에게 바쳤다.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고, 소부리군의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였다.

○三年, 春正月, 拜祖考廟. 中侍<義忠>卒, 以伊 <信忠>爲中侍. <善天宮>成. 賜<邢璹>黃金三十兩·布五十匹·人蔘一百斤. 二月, 拜王弟<憲英>爲波珍 . 三月, 納伊 <順元>女<惠明>爲妃. 夏五月, 封波珍 <憲英>爲太子. 秋九月, <完山州>獻白鵲. 狐鳴<月城>宮中, 狗咬殺之.

3년 봄 정월, 왕이 조부의 사당에 참배하였다.
중시 의충이 사망하자, 이찬 신충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선천궁이 낙성되었다. 형도에게 황금 30냥과 베 50필, 인삼 100근을 주었다.
2월, 왕의 아우 헌영을 파진찬에 임명하였다.
3월, 이찬 순원의 딸 혜명을 왕비로 맞았다.
여름 5월, 파진찬 헌영을 태자로 봉하였다.
가을 9월, 완산주에서 흰 까치를 바쳤다.
여우가 월성궁에서 울었는데, 그것을 개가 물어 죽였다.

○四年, 春三月, <唐>遣使, 冊夫人<金>氏爲王妃. 夏五月, 鎭星犯軒轅大星. 秋七月, 有一緋衣女人, 自<隸橋>下出, 謗朝政, 過<孝信公>門, 忽不見. 八月, 波珍 <永宗>謀叛, 伏誅. 先是, <永宗>女入後宮, 王絶愛之, 恩渥日甚. 王妃嫉妬, 與族人謀殺之. <永宗>怨王妃宗黨, 因此叛.

4년 봄 3월, 당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부인 김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여름 5월, 토성이 헌원 성좌의 큰 별을 범하였다.
가을 7월, 붉은 옷을 입은 여자 한 명이 예교 밑에서 나와 조정의 정사를 비방하다가, 효신공의 대문을 지나간 후로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8월, 파진찬 영종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형되었다. 이보다 앞서 영종의 딸이 왕의 후궁으로 들어오자, 왕이 그를 몹시 사랑하여 은총이 날로 심하였다. 왕비는 이를 질투하여 자기 친척과 함께 그녀를 죽이려 하였다. 이리하여 영종이 왕비와 그의 친척 무리들에게 원한을 갖게 되어 반역을 한 것이다.

○五年, 夏四月, 命大臣<貞宗>·<思仁>, 閱弩兵.

5년 여름 4월, 대신 정종·사인으로 하여금 쇠뇌를 쏘는 군사들을 검열하게 하였다.

○六年, 春二月, 東北地震, 有聲如雷. 夏五月, 流星犯參大星. 王薨. 諡曰<孝成>. 以遺命, 燒柩於<法流寺>南, 散骨東海.

6년 봄 2월, 동북쪽에서 지진이 있었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여름 5월, 유성이 삼대성을 범하였다.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효성이라 하였다. 유언에 따라 관을 법류사 남쪽에서 불에 태우고, 유골을 동해에 뿌렸다.

○<景德王>立. 諱<憲英>, <孝成王>同母弟. <孝成>無子, 立<憲英>爲太子, 故得嗣位. 妃伊 <順貞>之女也.

경덕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헌영이며, 효성왕의 동복 아우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헌영을 태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한 것이다. 왕비는 이찬 순정의 딸이다.

○元年, 冬十月, <日本國>使至, 不納.

원년 겨울 10월, 일본국 사신이 왔으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二年, 春三月, <主力公>宅, 牛一産三{五} 犢. <唐><玄宗>, 遣贊善大夫<魏曜>來吊祭. 仍冊王爲<新羅>王, 襲先王官爵, 制曰: "故開府儀同三司使(+充) 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持節寧海軍使<新羅>王<金承慶>弟<憲英>, 奕業{葉} 懷仁, 率心常禮, 大賢風敎, 條理尤明, 中夏軌儀, 衣冠素襲. 馳海琛而遣使, 準雲呂而通朝, 代爲純臣, 累 忠節. 頃者, 兄承土宇, 沒而絶嗣, 弟膺繼及, 抑惟常經, 是用賓懷, 優以冊命, 宜用舊業,  承藩長之名. 仍加殊禮, 載錫<漢>官之號, 可襲兄<新羅>王開府儀同三司使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充持節寧海軍使." 幷賜御註『孝經』一部. 夏四月, 納舒弗邯<金義忠>女, 爲王妃. 秋八月, 地震. 冬十二月, 遣王弟入<唐>賀正. 授左淸道率府員外長史, 賜綠袍銀帶, 放還.

李丙燾. [新唐書].
趙炳舜. 『三國史節要』.李丙燾.李丙燾.
2년 봄 3월, 주력공의 집에서 소가 한번에 송아지 세 마리를 낳았다.
당 현종이 찬선대부 위요를 보내와 제사에 참여하게 하고, 이어 왕을 신라왕으로 책봉하여 선왕의 관작을 잇게 하였는데, 그 조서는 다음과 같았다.
"고 '개부의동삼사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지절영해군사신라왕' 김 승경의 아우 헌영은 대대로 왕업을 계승하여 어진 생각을 품고, 상도에 맞는 예의에 마음을 두었으니, 기자(箕子)의 풍속과 교화는 조리가 더욱 밝아지고, 중국 제도의 의관도 스스로 답습하게 되었다. 바다를 통하여 사신을 보내오고, 구름을 벗삼는 먼 길을 따라 당 나라의 조정에 왕래하여, 대대로 사심 없는 신하로서 여러 번 충절을 나타내었다. 이전에 왕의 형이 국가를 계승하였으나, 그가 아들이 없어 아우가 그 뒤를 잇게되니, 이것도 상례일 것이므로, 이에 빈례로 우대하여 책명하노니, 마땅히 구업을 지켜 번국의 수장으로서의 명예를 계승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예우를 가하여 중국 관작의 칭호를 주노니 형의 관작인 '신라왕개부의동삼사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충지절영해군사'를 이어 받으라." 조서와 함께 황제의 명령으로 주해를 가한 [효경] 한 권을 주었다.
여름 4월, 서불한 김 의충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가을 8월, 지진이 있었다.
겨울 12월, 왕의 아우를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니, 황제가 그에게 좌청도솔부원외장사 벼슬을 주고, 초록빛 웃옷과 은대를 주어 돌려 보냈다.

○三年, 春正月, 以伊 <惟正>爲中侍. 閏二月, 遣使入<唐>賀正, 幷獻方物. 夏四月, 親祀神宮. 遣使入<唐>獻馬. 冬,  {妖} 星出中天, 大如五斗器. 浹旬乃滅.

趙炳舜. 『三國史節要』.
3년 봄 정월, 이찬 유정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윤 2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신년 하례를 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쳤다.
여름 4월, 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말을 바쳤다.
겨울에 이상한 별이 중천에 나타났는데, 크기가 닷말들이 그릇만 하였다. 이 별은 열흘 만에 사라졌다.

○四年, 春正月, 拜伊 <金思仁>爲上大等. 夏四月, 京都雹, 大如鷄子. 五月, 旱. 中侍<惟正>退, 伊 <大正>爲中侍. 秋七月, 葺東宮. 又置司正府·少年監典·穢宮典.

4년 봄 정월, 이찬 김 사인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여름 4월, 서울에 우박이 내렸다. 그 크기가 달걀 정도였다.
5월, 가뭄이 들었다.
중시 유정이 퇴직하자, 이찬 대정이 중시가 되었다.
가을 7월, 동궁을 수리하고, 또한 사정부와 소년감전과 예궁전을 설치하였다.

○五年, 春二月, 遣使入<唐>賀正, 幷獻方物. 夏四月, 大赦, 賜大 , 度僧一百五十人.

5년 봄 2월, 당에 사신을 보내 신년 하례를 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여름 4월, 죄수들을 대사하고, 백성들을 위한 큰 연회를 베풀었다. 중 15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六年, 春正月, 改中侍爲侍中. 置國學諸業博士·助敎. 遣使入<唐>賀正, 幷獻方物. 三月, 震<眞平王陵>. 秋, 旱. 冬, 無雪. 民饑且疫, 出使十道安撫.

6년 봄 정월, 중시를 시중으로 고치고, 국학에 제업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3월, 진평왕릉에 벼락이 쳤다.
가을에 가뭄이 들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백성들이 굶주리고 또한 전염병이 돌았으므로, 사방에 특사를 보내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위로하였다.

○七年, 春正月, 天狗落地. 秋八月, 太后移居<永明新宮>. 始置貞察{員察} 一員, 糾正百官. 遣阿 <貞節>等, 檢察北邊. 始置<大谷城>等十四郡縣.

趙炳舜. 『三國史節要』.
7년 봄 정월, 천구성이 땅에 떨어졌다.
가을 8월, 태후가 새로 지은 영명궁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처음으로 정찰 한 명을 두어 백관을 규찰하여 바로 잡게 하였다.
아찬 정절 등을 파견하여 북쪽 변경을 시찰하게 하였다.
처음으로 대곡성 등 14개의 군현을 두었다.

○八年, 春三{二} 月, 暴風拔木. 三月, 置天文博士一員·漏刻博士六員.

趙炳舜. 『三國史節要』.
8년 봄 3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3월, 천문 박사 한 명과 누각 박사 여섯 명을 두었다.

○九年, 春正月, 侍中<大正>免, 伊 <朝良>爲侍中. 二月, 置御龍省奉御二員.

9년 봄 정월, 시중 대정이 사직하자, 이찬 조량이 시중이 되었다.
2월, 어룡성에 봉어 두 명을 두었다.

○十一年, 春三月, 以級 <原神>·<龍方>爲大阿 . 秋八月, 置東宮衙官. 冬十月, 加置倉部史三人.

11년 봄 3월, 급찬 원신과 용방을 대아찬으로 삼았다.
가을 8월, 동궁아관을 두었다.
겨울 10월, 창부에 사 3명을 더 두었다.

○十二年, 秋八月, <日本國>使至, 慢而無禮, 王不見之, 乃廻. <武珍州>獻白雉.

12년 가을 8월, 일본국 사신이 왔는데, 그가 오만무례하므로 왕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곧 돌아갔다.
무진주에서 흰 꿩을 바쳤다.

○十三年, 夏四月, 京都雹, 大如鷄卵. 五月, 立<聖德王>碑. <牛頭州>獻瑞芝. 秋七月, 王命官修葺<永興>·<元延{元永} >二寺. 八月, 旱, 蝗. 侍中<朝良>退.

趙炳舜. 『三國史節要』.
13년 여름 4월, 서울에 우박이 내렸다. 크기가 달걀 정도였다.
5월, 성덕왕의 비석을 세웠다.
우두주에서 상서로운 지초를 바쳤다.
가을 7월, 왕이 관원을 시켜 영흥사와 원연사를 수리하였다.
8월,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시중 조량이 퇴직하였다.

○十四年, 春,  貴民饑. <熊川州><向德>, 貧無以爲養, 割股肉, 飼其父. 王聞, 賜賚頗厚, 仍使旌表門閭. <望德寺>塔動.[<唐><令狐澄>『新羅國記』曰: "其國, 爲<唐>立此寺, 故以爲名. 兩塔相對高十三層, 忽震動開合, 如欲傾倒者數日. 其年<祿山>亂, 疑其應也."] 夏四月, 遣使入<唐>賀正. 秋七月, 赦罪人, 存問老疾鰥寡孤獨, 賜 有差. 以伊 <金耆>爲侍中.

14년 봄, 곡식이 귀하여 백성들이 굶주렸다. 웅천주의 향덕이라는 사람이 가난하여 그 아버지를 봉양할 수가 없었으므로, 자기의 다리 살을 베어 아버지에게 먹였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 선물을 후히 주고, 동시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망덕사 탑이 흔들렸다.[당 나라 영호징의 [신라국기]에 "신라가 당 나라를 위하여 이 절을 세운 까닭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두 탑은 마주 보고 있으며, 높이는 13층이다. 두 탑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떨어졌다 붙었다하며 곧 넘어질 듯하였다. 이러한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이 해에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그 감응이 아닌가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름 4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가을 7월, 죄수들을 석방하고, 늙고 병든 이·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정도에 따라 곡식을 주었다. 이찬 김 기를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十五年, 春二月, 上大等<金思仁>, 以比年災異屢見, 上疏極論時政得失, 王嘉納之. 王聞<玄宗>在<蜀>, 遣使入<唐>,  <江>至<成都>, 朝貢. <玄宗>御製御書五言十韻詩, 賜王曰: "嘉<新羅>王歲修朝貢, 克踐禮樂名義, 賜詩一首: 四維分景緯, 萬象含中樞. 玉帛遍天下, 梯航歸上都. 緬懷阻靑陸, 歲月勤黃圖. 漫漫窮地際, 蒼蒼連海隅. 興言名義國, 豈謂山河殊. 使去傳風敎, 人來習典謨. 衣冠知奉禮, 忠信識尊儒. 誠矣天其鑑, 賢哉德不孤. 擁 同作牧, 厚 比生 . 益重靑靑志, 風霜恒不 ." 帝幸<蜀>時, <新羅>能不遠千里, 朝聘行在所, 故嘉其至誠, 賜之以詩. 其云: "益重靑靑志, 風霜恒不 "者, 豈古詩"疾風知勁草, 叛{板} 蕩識貞臣"之意乎. <宣和>中, 入朝使臣<金富儀>將刻本, 入< 京>, 示 伴學士<李 >. <李 >上皇帝, 因宣示兩府及諸學士訖, 傳宣曰: "進奉侍郞所上詩, 眞明皇書." 嘉嘆不已. 夏四月, 大雹. <大永郞>獻白狐, 授位南邊第一.

趙炳舜. 『三國史節要』.
15년 봄 2월, 상대등 김 사인이, 해마다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난 사실을 들어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 상소는 시국 정치의 옳고 그름을 극렬하게 비평한 것이었다.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받아 들였다.
왕이, 당 현종이 촉 지방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성도에 이르러 조공하였다. 현종은 5언 10운 시를 직접 짓고 써서 왕에게 보내며 말했다.
"신라왕이 해마다 조공을 잘 하고, 예악 및 대의명분을 훌륭하게 실행에 옮기므로, 시 한편을 지어 주노라.
사방은 위도로 나뉘어 있으나
만물은 모두 중심을 가지고 있네.
옥과 비단은 천하에 두루 퍼져 있으나
산 넘고 물 건너 중국의 서울로 찾아 든다.
생각하면 먼 곳 동방은 막혔건만
해마다 신라는 중국을 위해 힘을 쓰네.
아득히 먼 곳 땅의 끝
푸른 바다 한 구석에 자리하건만
대의 명분 지키는 나라라고 일컬어지니
산 다르고 물 다른 나라라고 어찌 부르랴.
사신은 돌아가 중국의 풍교를 전하고
사람들은 찾아와 우리의 옛 고전을 배워 가는구나.
의관을 예절에 맞출 줄 알고
충성스럽고 신의를 지키며 학문을 존중할 줄 아나니,
그 성실함이여, 하늘이 굽어 볼 것이오,
그 현명함이여, 덕행은 외롭지 않으리!
깃발 세우고 우리처럼 백성을 다스리니
보내 준 후한 선물 정성이 넘치나니
푸르고 푸른 지조 더욱 소중히 하여
바람 서리 맞아도 영원히 변하지 말라."
현종이 촉 지방에 갔을 때, 신라가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황제의 행재소까지 찾아 갔으므로, 그 지성을 가상히 여겨 시를 지어 준 것이다. 싯구 중의 "푸르고 푸른 지조 더욱 소중히 하여, 바람 서리 맞아도 영원히 변하지 말라"라고 한 것은, 옛날의 싯구인 "강한 바람이 불어야만 강한 풀을 알게 되고, 정치가 문란한 뒤에야 지조 있는 신하를 알 수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선화 연간에 송 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 부의가 이 시의 각본을 가지고 변경에 가서 접대원으로 있던 학사 이 병에게 보였다. 이 병은 이를 황제에게 바쳤는데, 황제는 양부와 여러 학사들에게 돌려 보이고, 황제의 의견을 말하기를 "진봉 시랑이 바친 시는 틀림 없는 현종의 글씨이다"라고 하면서 감탄하였다.
여름 4월, 큰 우박이 내렸다.
대영랑이 흰 여우를 바쳤으므로, 남변 제일의 직위를 주었다.

○十六年, 春正月, 上大等<思仁>病免, 伊 <信忠>爲上大等. 三月, 除內外群官月俸, 復賜祿邑. 秋七月, 重修<永昌宮>. 八月, 加調府史二人. 冬十二月, 改<沙伐州>爲<尙州>, 領州一, 郡十, 縣三十; < 良州>爲<良州>, 領州一, 小京一, 郡十二, 縣三十四; <菁州>爲<康州>, 領州一, 郡十一, 縣二十七; <漢山州>爲<漢州>, 領州一, 小京一, 郡二十七, 縣四十六; <首若州>爲<朔州>, 領州一, 小京一, 郡十一, 縣二十七; <熊川州>爲<熊州>, 領州一, 小京一, 郡十三, 縣二十九; <河西州>爲<溟州>, 領州一, 郡九, 縣二十五; <完山州>爲<全州>, 領州一, 小京一, 郡十, 縣三十一; <武珍州>爲<武州>, 領州一, 小京一, 郡十四, 縣四十四.[<良州>一作<梁州>.]

16년 봄 정월, 상대등 김 사인이 병으로 사직하자, 이찬 신충이 상대등이 되었다.
3월, 서울과 지방 관리들의 월급제를 폐지하고, 다시 녹읍을 주었다.
가을 7월, 영창궁을 중수하였다.
8월, 조부에 사 2명을 더 두었다.
겨울 12월, 사벌주를 상주로 고치고, 1주 10군 30현을 소속시켰다. 삽량주를 양주로 고치고, 1주 1소경 12군 34현을 소속시켰다. 청주를 강주로 고치고, 1주 11군 27현을 소속시켰다. 한산주를 한주로 고치고, 1주 1소경 27군 46현을 소속시켰다. 수약주를 삭주로 고치고, 1주 1소경 11군 27현을 소속시켰다. 웅천주를 웅주로 고치고, 1주 1소경 13군 29현을 소속시켰다. 하서주를 명주로 고치고, 1주 9군 25현을 소속시켰다. 완산주를 전주로 고치고, 1주 1소경 10군 31현을 소속시켰다. 무진주를 무주로 고치고, 1주 14군 44현을 소속시켰다.['良州'는 '梁州'로 쓰기도 한다.]

○十七年, 春正月, 侍中<金耆>卒, 伊 <廉相>爲侍中. 二月, 下敎: 內外官請暇滿六十日者, 聽解官. 夏四月, 選醫官精究者, 充內供奉. 置律令博士二員. 秋七月二十三日, 王子生. 大雷電, 震佛寺十六所. 八月, 遣使入<唐>朝貢.

17년 봄 정월, 시중 김 기가 죽자, 이찬 염 상이 시중이 되었다.
2월, 왕이 교서를 내려서, 내외의 관원을 막론하고 휴가를 만 60일 이상 얻은 자는 해직으로 인정하였다.
여름 4월, 의술을 깊이 연구한 자를 선발하여, 내공봉을 맡도록 하였다. 율령 박사 두 명을 두었다.
가을 7월 23일, 왕자가 탄생하였다. 우레와 번개가 심하였고, 16곳의 절에 벼락이 쳤다.
8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十八年, 春正月, 改兵部·倉部卿·監爲侍郞, 大舍爲郞中, 改執事舍知爲執事員外郞, 執事史爲執事郞. 改調府·禮部·乘府·船府·領客府·左右議方府·司正府·位和府·例作典·大學監·大道署·永昌宮等大舍爲主簿. 賞賜署·典祀署·音聲署·工匠府·彩典等大舍爲主書. 二月, 改禮部舍知爲司禮, 調府舍知爲司庫, 領客府舍知爲司儀, 乘府舍知爲司牧, 船府舍知爲同舟{司舟} , 例作府舍知爲司例, 兵部弩舍知爲司兵, 倉部租舍知爲司倉. 三月, 彗星見, 至秋乃滅.

趙炳舜. 『三國史節要』.
18년 봄 정월, 병부와 창부의 경과 감을 시랑으로, 대사를 낭중으로, 집사부의 사지를 집사원외랑으로, 집사사를 집사랑으로 개칭하였다. 조부·예부·승부·선부·영객부·좌우의방부·사정부·위화부·예작전·태학감·대도서·영창궁 등의 대사를 주부로 개칭하였으며, 상사서·전사서·음성서·공장부·채전 등의 대사를 주서로 개칭하였다.
2월, 예부의 사지를 사례로, 조부의 사지를 사고로, 영객부의 사지를 사의로, 승부의 사지를 사목으로, 선부의 사지를 사주로, 예작부의 사지를 사례로, 병부의 노사지를 사병으로, 창부의 조사지를 사창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3월, 혜성이 나타났다. 이 혜성은 가을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十九年, 春正月, 都城寅方, 有聲如伐鼓, 衆人謂之鬼鼓. 二月, 宮中穿大池. 又於宮南<蚊川>之上, 起<月淨>·<春陽>二橋. 夏四月, 侍中<廉相>退, 伊 <金邕>爲侍中. 秋七月, 封王子<乾運>, 爲王太子.

19년 봄 정월, 서울 동쪽에서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이를 귀신이 치는 북 소리라고 말하였다.
2월, 대궐 안에 큰 연못을 파고, 또한 대궐 남쪽 문천 위에 월정교·춘양교의 두 다리를 놓았다.
여름 4월, 시중 염 상이 퇴직하고, 이찬 김 옹이 시중이 되었다.
가을 7월, 왕자 건운을 왕태자로 봉하였다.

○二十年, 春正月朔, 虹貫日, 日有珥. 夏四月, 彗星出.

20년 봄 정월 초하룻날,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였고 햇무리가 보였다.
여름 4월, 혜성이 나타났다.

○二十一年, 夏五月, 築<五谷>·< 巖>·<漢城>·<獐塞>·<池城>·<德谷>六城, 各置太守. 秋九月, 遣使入<唐>朝貢.

21년 여름 5월, 오곡·휴암·한성·장새·지성·덕곡의 여섯 성을 쌓고, 각각 태수를 두었다.
가을 9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二十二年, 夏四月, 遣使入<唐>朝貢. 秋七月, 京都大風, 飛瓦拔樹. 八月,  {桃} 李再花. 上大等<信忠>·侍中<金邕>免. 大奈麻<李純>爲王寵臣, 忽一旦避世入山, 累徵不就. 剃髮爲僧, 爲王創立<斷俗寺>, 居之. 後, 聞王好樂, 卽詣宮門. 諫奏曰: "臣聞: 昔者, <桀>·<紂>荒于酒色, 淫樂不止. 由是, 政事凌遲{夷} , 國家敗滅, 覆轍在前, 後車宜戒. 伏望: 大王改過自新, 以永國壽." 王聞之感歎, 爲之停樂. 便引之正室, 聞說道妙, 以及理世之方, 數日乃止.

趙炳舜. 『三國史節要』.趙炳舜. 『三國史節要』.
22년 여름 4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7월, 서울에 큰 바람이 불어 기와가 날리고 나무가 뽑혔다.
8월,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두 번째 피었다.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 옹이 퇴직하였다. 대내마 이 순은 왕의 총신이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피하여 산으로 들어 갔는데, 여러 번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세우고 그 곳에서 살았다. 그 후 왕이 풍악을 즐긴다는 말을 듣고 그는 즉시 대궐문으로 찾아갔다. 그는 왕에게 "제가 듣건대 옛날 걸주가 주색에 빠져 황음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로 인하여 정치가 문란하고 나라가 망하였다고 합니다. 앞에 가는 수레 바퀴가 엎어지면 뒷 수레는 마땅히 이를 경계 하여야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대왕은 허물을 고치고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 나라를 영원히 보존하소서"라고 간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감탄하여 풍악을 그치게 하고, 그를 큰 방으로 인도하여 도리의 오묘함과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며칠 동안이나 들었다.

○二十三年, 春正月, 伊 <萬宗>爲上大等, 阿 <良相>爲侍中. 三月, 星 于東南. 龍見<楊山>下, 俄而飛去. 冬十二月十一日, 流星或大或小, 觀者不能數.

23년 봄 정월, 이찬 만종이 상대등이 되고, 아찬 양상이 시중이 되었다.
3월, 혜성이 동남쪽에 나타나고, 용이 양산 밑에 나타났다가 얼마 안되어 날아갔다.
겨울 12월 11일, 크고 작은 유성이 나타났는데, 이를 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二十四年, 夏四月, 地震. 遣使入<唐>朝貢, 帝授使者檢校禮部尙書. 六月, 流星犯心. 是月, 王薨. 諡曰<景德>, 葬<毛祇寺>西岑.[『古記』云: "<永泰>元年乙巳卒." 而『舊唐書』及『資理通鑑』皆云: "<大曆>二年, <新羅>王<憲英>卒." 豈其誤耶.]

24년 여름 4월, 지진이 있었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황제가 사신에게 검교예부상서 벼슬을 주었다.
6월, 유성이 심성을 범하였다.
이 달에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경덕이라 하고 모지사 서쪽 산에 장사지냈다.[고기에는 '영태 원년 을사에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구당서]와 [자리통감]에는 모두 '대력 2년에 신라왕 헌영이 사망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惠恭王>立. 諱<乾運>, <景德王>之嫡子. 母, <金>氏<滿月>夫人, 舒弗邯<義忠>之女. 王卽位時年八歲, 太后攝政.

혜공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건운이며, 경덕왕의 적자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월부인이며 서불한 의충의 딸이다. 왕이 즉위했을 때 나이가 여덟살이었으므로, 태후가 섭정하였다.

○元年, 大赦. 幸大學, 命博士講『尙書』義.

원년에 죄수들을 대사하고, 왕이 태학에 행차하여 박사에게 상서를 강의하게 하였다.

○二年, 春正月, 二日 出. 大赦. 二月, 王親祀新宮. <良里公>家牝牛生犢, 五脚, 一脚向上. <康州>地陷成池, 縱廣五十餘尺, 水色靑黑. 冬十月, 天有聲如鼓.

2년 봄 정월, 두 개의 해가 나타났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월, 왕이 신궁에 직접 제사를 지냈다.
양리공 집에서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다리가 다섯이었다. 다리 하나는 위로 향하였다.
강주에서 땅이 내려앉아 연못이 되었는데, 넓이가 50여 척이고 검푸른 물빛이었다.
겨울 10월,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북소리 같았다.

○三年, 夏六月, 地震. 秋七月, 遣伊 <金隱居>, 入<唐>貢方物, 仍請加冊命. 帝御<紫震殿{紫宸殿}> 宴見. 三星隕王庭, 相擊, 其光如火 散. 九月, <金浦縣>禾實皆米.

趙炳舜. 『三國史節要』.
3년 여름 6월, 지진이 있었다.
가을 7월, 이찬 김 은거를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동시에 책명해주기를 요청하니 황제가 자신전에 나와 접견하였다.
별 세 개가 대궐에 떨어져 서로 부딪쳤다. 그 빛이 불같이 솟아 올랐다가 흩어졌다.
9월, 김포현에서 벼 이삭이 모두 쌀로 변하였다.

○四年, 春, 彗星出東北. <唐><代宗>遣倉部郞中<歸崇敬>兼御史中丞, 持節齎冊書, 冊王爲開府儀同三司<新羅>王. 兼冊王母<金>氏爲大妃. 夏五月, 赦殊死已下罪. 六月, 京都雷雹傷草木. 大星隕<皇龍寺>南. 地震聲如雷, 泉井皆渴. 虎入宮中. 秋七月, 一吉 <大恭>與弟阿 <大廉>叛, 集衆, 圍王宮三十三日. 王軍討平之, 誅九族. 九月, 遣使入<唐>朝貢. 冬十月, 以伊 <神猷>爲上大等, 伊 <金隱居>爲侍中.

4년 봄, 혜성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당 나라 대종이 창부낭중 귀 숭경에게 어사중승을 겸직시켜 황제의 신임표와 책봉서를 가지고 와서 왕을 '개부의동삼사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동시에 왕의 어머니 김씨를 대비로 책봉하였다.
여름 5월, 사형수를 제외한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6월, 서울에 벼락이 치고 우박이 내려 초목이 상하였다. 큰 별이 황룡사 남쪽에 떨어졌다.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그 소리가 벼락 소리 같았고, 우물과 샘이 모두 말랐다. 호랑이가 대궐에 들어 왔다.
가을 7월, 일길찬 대공이 그의 아우인 아찬 대렴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반도를 모아 33일간 왕궁을 포위하였다. 왕의 군사가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9족을 모두 처형하였다.
9월, 사신을 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0월, 이찬 신유를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이찬 김 은거를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五年, 春三月, 燕群臣於<臨海殿>. 夏五月, 蝗. 旱. 命百官各擧所知. 冬十一月, <雉岳縣>鼠八千{數十} 許, 向<平壤>. 無雪.

趙炳舜. 『三國史節要』.
5년 봄 3월,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여름 5월, 메뚜기 떼가 생겼다. 가뭄이 들었다. 왕이 백관들에게 각자 아는 인물을 천거하게 하였다.
겨울 11월, 치악현에서 쥐 8천여 마리가 평양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

○六年, 春正月, 王幸<西原京>, 曲赦所經州縣繫囚. 三月, 雨土. 夏四月, 王至自<西原>. 五月十一日, 彗星出五章{五車} 北, 至六月十二日滅. 二十九日, 虎入執事省, 捉殺之. 秋八月, 大阿 <金融>叛, 伏誅. 冬十一月, 京都地震. 十二月, 侍中<隱居>退, 伊 <正門>爲侍中.

趙炳舜. 『三國史節要』.
6년 봄 정월, 왕이 서원경에 행차하였는데, 도중의 주와 현의 죄수들을 특사하였다.
3월, 흙비가 내렸다.
4월, 왕이 서원에서 돌아왔다.
5월 11일, 혜성이 오거성좌 북쪽에 나타났다가 6월 12일에 사라졌다.
29일, 호랑이가 집사성에 들어왔으므로 잡아 죽였다.
가을 8월, 대아찬 김 융이 반역하다가 사형당하였다.
겨울 11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12월, 시중 은거가 퇴직하자 이찬 정문이 시중이 되었다.

○八年, 春正月, 遣伊 <金標石>, 朝<唐>賀正. <代宗>授衛尉員外少卿放還.

8년 봄 정월, 이찬 김 표석을 당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당 나라 대종이 그에게 위위원외소경 벼슬을 주어 귀국시켰다.

○九年, 夏四月, 遣使如<唐>賀正, 獻金·銀·牛黃·魚牙紬·朝霞(+紬) 等方物. 六月, 遣使如<唐>謝恩, <代宗>引見於<延英殿{迎英殿}> .

李丙燾.趙炳舜. 『三國史節要』.
9년 여름 4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고 금·은·우황·어아주·조하주 등의 토산물을 바쳤다.
6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사은을 표하니, 대종이 사신을 연영전에서 접견하였다.

○十年, 夏四月, 遣使如<唐>朝貢. 秋九月, 拜伊 <良相>爲上大等. 冬十月, 遣使如<唐>賀正, 見于<延英殿>授員外衛尉卿遣之.

10년 여름 4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이찬 양상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겨울 10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황제는 연영전에서 이들을 접견하고, 그들에게 원외위위경 벼슬을 주어 귀국시켰다.

○十一年, 春正月, 遣使如<唐>朝貢. 三月, 以伊 <金順>爲侍中. 夏六月, 遣使朝<唐>. 伊 <金隱居>叛, 伏誅. 秋八月, 伊 <廉相>與侍中<正門>謀叛, 伏誅.

11년 봄 정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3월, 이찬 김 순으로 시중을 삼았다.
여름 6월, 사신을 파견하여 당 나라에 입조하였다.
이찬 김 은거가 반역하다가 처형당하였다.
가을 8월, 이찬 염 상이 시중 정문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형 당하였다.

○十二年, 春正月, 下敎: 百官之講{號} , 盡合復舊. 幸<感恩寺>望海. 二月, 幸國學聽號{講} . 三月, 加倉部史八人. 秋七月, 遣使朝<唐>, 獻方物. 冬十月, 遣使入<唐>朝貢.

李丙燾.
今西龍.趙炳舜. 『三國史節要』.
12년 봄 정월, 왕이 교서를 내려 백관들의 관직 이름을 모두 이전대로 복구하였다.
왕이 감은사에 행차하여 바다에 제사를 지냈다.
2월, 왕이 국학에 가서 강의를 들었다.
3월, 창부에 사 8명을 더 두었다.
가을 7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10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十三年, 春三月, 京都地震. 夏四月, 又震. 上大等<良相>上疏, 極論時政. 冬十月, 伊 <周元>爲侍中.

13년 봄 3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여름 4월, 지진이 다시 발생하였다.
상대등 양상이 상소하여 시국을 극렬하게 비판하였다.
겨울 10월, 이찬 주원이 시중이 되었다.

○十五年, 春三月, 京都地震, 壞民屋, 死者百餘人. 太白入月, 設百座法會.

15년 봄 3월, 서울에 지진이 발생하여 민가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백여 명이 되었다. 금성이 달에 들어 갔다. 백좌 법회를 열었다.

○十六年, 春正月, 黃霧. 二月, 雨土. 王幼少卽位, 及壯, 淫于聲色, 巡遊不度, 綱紀紊亂, 災異屢見, 人心反側, 社稷  . 伊 <志貞>叛, 聚衆, 圍犯宮闕. 夏四月, 上大等<金良相>與伊 <敬信>, 擧兵誅<志貞>等, 王與后妃爲亂兵所害. <良相>等諡王爲<惠恭王>. 元妃<新寶王后>, 伊 <維誠>之女, 次妃, 伊 <金璋>之女, 史失入宮歲月.

16년 봄 정월, 누런 안개가 끼었다.
2월, 흙비가 내렸다.
왕이 어렸을 때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들자 음악과 여색에 빠져, 아무 때나 법도를 잃고 놀러 다니며, 기강이 문란하여 재난과 이변이 자주 발생하였으므로, 인심이 이반되고 사직이 위태로웠다. 이찬 지정이 반란을 일으키고 반도를 모아 대궐을 포위하여 침범하였다.
여름 4월, 상대등 김 양상이 이찬 경신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지정 등을 죽였다. 왕과 왕비는 이 난리 중에 군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양상 등이 왕의 시호를 혜공왕이라 하였다. 대비 신보왕후는 이찬 유성의 딸이고, 다음 왕비는 이찬 김 장의 딸이었는데, 역사서에는 두 왕비가 궁에 들어온 시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宣德王>立. 姓<金>氏, 諱<良相>, <奈勿王>十世孫也. 父, 海 <孝芳>; 母, <金>氏<四炤>夫人, <聖德王>之女也; 妃, <具足>夫人, 角干<良品>之女也.[一云<義恭>阿 之女.] 大赦. 追封父爲<開聖大王>, 尊母<金>氏爲<貞懿太后>, 妻爲王妃. 拜伊 <敬信>, 爲上大等, 阿 <義恭>爲侍中. 改御龍省奉御爲卿, 又改卿爲監.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양상이고, 내물왕의 10대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해찬 효방이다. 어머니는 김씨 사조부인이며 성덕왕의 딸이다. 왕비는 구족부인이며 각간 양품의 딸이다.[아찬 의공의 딸이라고도 한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아버지를 개성대왕으로 추봉하고, 어머니 김씨를 정의태후로 추존하였으며, 아내를 왕비로 삼았다. 이찬 경신을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아찬 의공을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어룡성의 봉어를 경으로 고쳤다가 경을 다시 감으로 고쳤다.

○三{二} 年, 春二月, 親祀神宮. 秋七月, 發使安撫<浿江>南州郡.

趙炳舜. 『三國史節要』.
2년 봄 2월, 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가을 7월, 왕이 사신을 보내 패강 남쪽의 주와 군을 위무하였다.

○三年, 春閏正月, 遣使入<唐>朝貢. 二月, 王巡幸<漢山州>, 移民戶於<浿江鎭>. 秋七月, 大閱於<始林>之原.

3년 봄 윤정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월, 왕이 한산주를 순행하고 주민들을 패강진으로 옮겼다.
가을 7월, 시림 벌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하였다.

○四年, 春正月, 以阿 <體信>爲<大谷鎭>軍主. 二月, 京都雪三尺.

4년 봄 정월, 아찬 체신을 대곡진 군주로 임명하였다.
2월, 서울에 눈이 석 자나 내렸다.

○五年, 夏四月, 王欲遜位. 群臣三上表諫, 乃止.

5년 여름 4월, 왕이 왕위를 물러나려 했다. 여러 신하들이 세 번이나 표를 올려 간하자, 이를 중지하였다.

○六年, 春正月, <唐><德宗>遣戶部郞中<蓋塤>, 持節冊命王, 爲檢校大尉< 林州>刺史寧海軍使<新羅>王. 是月, 王寢疾彌留. 乃下詔曰: "寡人本惟菲薄, 無心大寶, 難逃推戴, 作其卽位. 居位以來, 年不順成, 民用窮困, 此皆德不符民望, 政未合天心. 常欲禪讓, 退居于外, 群官百 , 每以誠止, 未果如意, 因循至今. 忽 疾疹, 不寤不興. 死生有命, 顧復何恨? 死後, 依佛制燒火, 散骨東海!" 至十三日薨, 諡曰<宣德>.
三國史記卷第九.

6년 봄 정월, 당 덕종이 호부낭중 개 훈을 지절사로 보내 왕을 '검교대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이 달에 왕이 병으로 누웠고, 병이 점점 위독해지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과인은 본래 재능이 없고 덕이 적어 왕위에 오를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를 피할 수 없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이래 해마다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백성의 일상 생활이 곤궁하여졌으니, 이는 모두 과인의 덕성이 백성들의 소망에 부합되니 아니하고, 정치가 하늘의 뜻에 합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인은 항상 왕위를 물러나 궁궐 밖에 살고자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이 그 때마다 지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매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었다. 이제 갑자기 병이 나서 다시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다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과인이 죽은 후에는 불교의 법식 대로 화장할 것이며, 유골을 동해에 뿌리도록 하라."
13일에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선덕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 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