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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삼국사기 45권 열전 제 5 三國史記卷第四十五. 삼국사기 권 제 45 列傳第五. ····· ···. 趙炳舜. 『顯宗實錄字本』. 열전 제 5 을파소. 김 후직. 녹진. 밀우. 유유. 명림답부. 석우로. 박 제상. 귀산. 온달. 人也. 時, 沛者 ·評者等, 皆以外戚擅權, 多行不義, 國人怨憤. 王怒欲誅之, 等謀反, 王誅竄之. 遂下令曰: "近者, 官以寵授, 位非德進, 毒流百姓, 動我王家, 此寡人不明所致也. 今, 汝四部, 各擧賢良在下者." 於是, 四部共擧, 王徵之, 委以國政. 趙炳舜. 『三國史節要』. 『高麗朝刊殘本三國史記』. 을파소는 고구려인이다. 국천왕 때의 패자 어비류와 평자 좌가려 등이 모두 왕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부리고 그릇된 행동을 많이 하자 백성들이 원망하고 분개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들을 죽이려 하자 좌가려 등이 모반하므로 일부.. 더보기
삼국사기 44권 열전 제 4 三國史記卷第四十四. 삼국사기 권 제 44 列傳第四. ····· ··(+) ·. 趙炳舜. 열전 제 4 을지문덕. 거칠부. 거도. 이사부. 김 인문. 김 양. 흑치상지. 장 보고. 사다함. 未詳其世系. 資沈 有智數, 兼解屬文. 中, 下詔征. 於是, 左翊衛大將軍, 出道, 右翊衛大將軍, 出道, 與九軍至. 受王命, 詣其營詐降, 實欲觀其虛實. 與, 先奉密旨, 若遇王及來, 則執之, 等, 將留之, 尙書右丞, 爲慰撫使, 固止之, 遂聽歸, 深悔之, 遣人 曰: "更欲有議{言} , 可復來." 不顧, 遂濟而歸. 與, 旣失, 內自不安. 以粮盡欲還, 謂{議} 以精銳追, 可以有功, 止之. 怒曰: "將軍仗十萬兵, 不能破小賊, 何顔以見帝." 等不得已而從之, 度追之. 見軍士有饑色, 欲疲之, 每戰輒北{走} , 等一日之中, 七戰皆捷. 旣恃驟.. 더보기
삼국사기 43권 열전 제 3 三國史記卷第四十三. 삼국사기 권 제 43 列傳第三 金庾信(下) 열전제 3 김유신(하) ○元年□□□{甲子三} 月, 餘衆, 又聚反叛, 都督, 發所管兵士攻之, 累日霧塞, 不辨人物, 是故, 不能戰, 使來告之, 授之陰謀, 以克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인덕 원년 갑자 3월, 백제의 잔적이 다시 사비성에 모여 반란을 일으켰다. 웅주 도독이 자기 소관의 병력으로 공격했으나, 여러 날 안개가 끼어서 사람과 물건을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싸움을 할 수 없었다. 백산으로 하여금 그 사정을 보고하게 하니 유신이 비밀 계책을 알려 주어 이들을 격파하게 하였다. ○二年, 遣使·等來聘. 兼冊奉常正卿郡開國公, 食邑二千戶. 인덕 2년, 당 나라 고종이 사신 양동벽과 임지고 등을 보내와 빙문하고, 동시에 유신을 봉상정경 평양군 .. 더보기
삼국사기 42권 열전 제 2 三國史記卷第四十二. 삼국사기 권 제 42 列傳 第二 金庾信(中) 趙炳舜. 열전 제 2 김 유신 (중) ○(+太和) 二年秋八月, 將軍, 來攻等七城. 王命及··等將軍, 出禦之. 分三軍爲五道, 擊之, 互相勝負, 經旬不解, 至於 屍滿野, 流血浮杵. 於是, 屯於下, 歇馬餉士, 以圖再擧. 時, 有水鳥東飛, 過之幕, 將士見之, 以爲不祥. 曰: "此不足怪也." 謂衆曰: "今日, 必有人來諜. 汝等佯不知, 勿敢誰何." 又使徇于軍中曰: "堅壁不動, 待明日援軍至, 然後, 決戰." 趙炳舜. 『三國史記』 列傳41卷. 2년 가을 8월에 백제 장군 은상이 쳐들어와서 석토 등의 일곱 성을 공격하였다. 왕은 유신과 죽지·진춘·천존 등의 장군들에게 명령하여 이를 방어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삼군을 오도로 나누어 공격하였다. 그러나 승패를 .. 더보기
삼국사기 41권 열전 제 1 三國史記 列傳 (三國史記卷第四十一 ~ 三國史記卷第五十) 三國史記卷第四十一 열전 제 1 김 유신 상 三國史記卷第四十二 열전 제 2 김 유신 중 三國史記卷第四十三 열전 제 3 김 유신 하 三國史記卷第四十四 열전 제 4 을지문덕. 거칠부. 거도. 이사부. 김 인문. 김 양. 흑치상지. 장보고. 사다함. 三國史記卷第四十五 열전 제 5 을파소. 김후직. 녹진. 밀우와 유유. 명림답부. 석우로. 박 제상. 귀산. 온달. 三國史記卷第四十六 열전 제 6 강수. 최 치원. 설 총. 三國史記卷第四十七 열전 제 7 해론. 소나. 취도. 눌최. 설 계두. 김 영윤. 관창. 김 흠운. 열기. 비녕자. 죽죽. 필부. 계백. 三國史記卷第四十八 열전 제 8 상덕. 성각. 실혜. 물계자. 백결선생. 검군. 김 생. 솔거. 효녀 지은... 더보기
삼국사기 40권 잡지 제 9 三國史記卷第四十. 삼국사기 권 제 40 雜志第九. 職官下. 잡지 제 9. 관직 하. 武官. 무관 ○侍衛府, 有三徒, 五年置. 將軍六人, 元年, 罷監置將軍, 位自級瑗至阿瑗爲之. 大監六人, 位自奈麻至阿瑗爲之. 隊頭十五人, 位自舍知至沙瑗爲之. 項三十六人, 位自舍知至大奈麻爲之. 卒百十七人, 位自先沮知至大舍爲之. 시위부: 삼도가 있었는데 진덕왕 5년에 설치하였다. 장군은 6명이니, 신문왕 원년에 감을 폐지하고 장군을 둔 것이다. 관등은 급찬으로부터 아찬까지이다. 대감은 6명인데 관등은 나마로부터 아찬까지이다. 대두가 15명인데 관등은 사지로부터 사찬까지이다. 항이 36명인데 관등은 사지로부터 대나마까지이다. 졸은 117명인데 관등은 선저지로부터 대사까지이다. ○諸軍官, 將軍共三十六人, 掌大幢四人, 貴幢四人. 停[.. 더보기
삼국사기 39권 잡지 제 8 三國史記卷第三十九. 삼국사기 권 제 39 雜志第八. 職官中. 잡지 제 8. 관직 중. ○內省, 十八年, 改爲殿中省, 後復故. 私臣一人, 七年, 三宮, 各置私臣. 大宮, 和文大阿瑗; 梁宮, 首?夫阿瑗; 沙梁宮, 弩知伊瑗. 至四十四年, 以一員兼掌三宮, 位自衿荷至太大角干, 惟其人則授之, 亦無年限. 又改爲殿中令, 後復稱私臣. 卿二人, 位自奈麻至阿瑗爲之. 監二人, 位自奈麻至沙瑗爲之. 大舍一人, 舍知一人. ○內司正典, 五年置. 十八年, 改爲建平省, 後復故. 議決一人, 貞察{員察}?二人, 史四人. ○典大舍典, 典大舍一人, 典翁一人, 史四人. ○上大舍典, 上大舍一人, 上翁一人. ○黑鎧監, 改爲衛武監, 後復故. 大舍一人, 史八人. 趙炳舜. 『三國史節要』. 내성: 경덕왕 18년에 명칭을 전중성으로 고쳤다가 뒤에 이전 명칭.. 더보기
삼국사기 38권 잡지 제 7 三國史記卷第三十八. 삼국사기 권 제 38 雜志第七. 職官上. 잡지 제 7. 관직 상. ○官號, 因時沿革, 不同其名言, 夷相雜, 其曰侍中·郞中等者, 皆官名, 其義若可考. 曰伊伐瑗·伊瑗等者, 皆夷言, 不知所以言之之意. 當初之施設, 必也職有常守, 位有定員, 所以辨其尊卑, 待其人才之大小. 世久, 文記缺落, 不可得穹考而周詳. 觀其第二, 以國事委任大臣, 謂之大輔, 第三, 設位十七等. 自是之後, 其名目繁多, 今採其可考者, 以著于篇. 신라 관직의 호칭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그 명칭이 같지 않다. 이에는 당 나라의 명칭과 우리나라의 명칭이 섞여 있다. 예컨대 시중이나 낭중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당의 관직명으로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나 이벌찬 혹은 이찬과 같은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 말로서 그 명칭을 붙이게 된 의미를 알.. 더보기
삼국사기 37권 잡지 제 6 三國史記卷第三十七. 삼국사기 권 제 37 雜志第六. 地理四. ·. 잡지 제 6. 지리 4. 고구려, 백제. ○按『通典』云: "以二年, 自東南行, 渡, 至居焉. 號曰, 以爲氏." 古記云: "自逃難, 至." 則·, 似一處也. 『漢書志』云: "距三千六百里, 屬縣有, 則『周禮』也, 於其下置. , 距東北四千里, 所屬三縣, 是其一焉." 則所謂所都·者, 蓋之界, 之西, 『漢志』所謂屬縣, 是歟. 昔未亡時, 帝在, 則吾人朝聘者, 過涉, 一兩日行至, 以向, 故知其然也. 自立都, 歷四十年, 二十二年, 移都.[或云?, 或云.] 趙炳舜. 『三國史節要』. [통전]에는 "주몽이 한 나라 건소 2년에 북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나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성씨를 '고'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 더보기
삼국사기 36권 잡지 제 5 三國史記卷第三十六. 삼국사기 권 제 36 雜志第五. 地理三. (+三)? 허성도. 잡지 제 5. 지리 3. ○, 本舊都. 遺平之, 置都督府. ?取其地有之, 改爲, 置都督, 十六年, 改名. 今?. 領縣二: , 本, ?改名, 今因之; , 本, 改名, 今. 今西龍.今西龍.今西龍. 웅주는 원래 백제의 옛 서울이었다. 당 고종이 소정방을 보내 평정하여 웅진도독부를 두었었고, 신라 문무왕이 그 지역을 빼앗아 차지하였으며, 신문왕이 이를 웅천주로 고치고 도독을 두었으며, 경덕왕 16년에 웅주로 개칭하였는데 지금의 공주이다. 이 주에 속한 현은 둘이다. 이산현은 원래 백제의 열야산현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청음현은 원래 백제의 벌음지현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신풍현이다. ○, 五年,.. 더보기